WRITER : 마감도비
반 년 간 재택근무를 하면서 늘어난 건 뱃살만이 아니었다. 집안 곳곳이 ‘쿠팡’과 ‘배민’이 보내온 각종 포장 용기로 가득 찼다. 미관상 보기에도 좋지 않았지만 어느 날 겹겹이 쌓여있는 종이상자와 줄지어 서있는 플라스틱 병을 보면서 내가 ‘환경파괴’에 앞장서고 있구나 싶었다. 물론, 그 뒤로도 ‘일회용품’이라는 문명의 이기를 잘 누렸지만 말이다.
‘환경파괴자’이던 내가 ‘환경 덜 파괴자’로 돌아서야겠다고 느낀 건 아이러니하게도 어느 종이컵을 통해서였다. 사무실에서 습관적으로 종이컵에 커피를 타 마시고 보니 종이컵에 다음과 같은 슬로건과 문구가 적혀있었다.
“Be Green Friends.”
“환경을 지키는 것은 다음 세대를 위한 우리의 약속입니다.”
처음엔 피식 웃음이 났다. ‘뭐라는 거야, 종이컵 주제에.’ 문득 궁금해 종이컵 포장지(당연히 비닐)를 찾아봤더니 모 편의점의 PB상품이었고 이름이 ‘친환경 종이컵’이었다. 재밌는 점은 환경을 지켜야 한다는 경고 문구 외에는 생분해 성질이 있다던가 재생지로 만들었다던가 하는 설명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거 순전히 말뿐이잖아?’
그런데 그 종이컵은 지구가 나에게 보내온 초대장(또는 경고장)이었을까. 그 뒤로도 ‘친환경적이지 않은 친환경 종이컵’은 내 뇌리에 계속 남았다. 그게 꼭 나 같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예컨대 ‘나는 지구가 소중하지 않아! 지구를 파괴하겠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테고, 모두가 크건 작건 지구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지구는 점점 더 뜨거워지고 공기는 나빠지는 중이다.
그럼 결국 우리를 결정짓는 건 평소의 마음가짐이나 마음속으로만 가지고 있는 결심이 아니라 행동이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일회용품을 덜 써보자는 것이었다. 그나마 내가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유튜브에서도 일회용품이나 분리수거에 관한 영상을 찾아보게 됐는데(이와 관련해 좋은 콘텐츠가 많았다), 아뿔싸. 그동안 내가 해왔던 분리수거도 올바른 방법이 아니었음을 알게 됐다. 플라스틱 용기는 깨끗이 씻어서 따로 내놓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비닐 라벨까지 모두 떼어내야 제대로 된 분리수거라는 것.
어쩔 수 없지... 자정에 가까워진 시간, 업무를 모두 마치고 쓰레기통 앞에 털썩 주저앉아 비닐봉투에 담아 놓은 생수, 커피, 음료가 담긴 플라스틱 병의 라벨을 하나하나 떼어냈다.
어느 회사, 어떤 음료의 플라스틱 병은 라벨을 떼기 쉽게 별도의 절취선이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것도 있었다. 그럴 때는 마치 어릴 적 공예 시간으로 돌아간 듯 가위질을 열심히 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플라스틱 병에 담긴 음료를 사먹게 된다면 절취선 없는 음료는 사먹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사무실에서도 가급적 종이컵 사용을 줄이려고 하는 중이다. 대신 머그컵을 애용하고 있다. 예전에 머그컵을 쓰려고 시도했다가 설거지가 귀찮아 책상 한편에 고이 모셔놨는데 요즘은 마우스만큼이나 자주 손에 들려있다.(일회용품은 줄일 수 있지만 커피를 줄일 수는 없으므로.)
환경보호, 라고 하기에는 너무 조촐한, 그럼에도 내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자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집 앞 동네카페는 디저트를 일회용기에 포장하지 않았다.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서 고객이 케이크를 담아갈 수 있는 다회용기를 가져와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카페의 정책을 소개하는 문구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당신의 용기를 응원합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나 먹고 사는 문제만으로도 골치 아프고 힘들어 죽겠는데 지구 생각할 틈이 어딨냐' 중얼거릴 때도 많습니다. 친환경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이들을 향해 리스펙을 보내는 한편으로 '저것도 다 그만한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되니 할 수 있는 거지'라는 멋없는 생각을 할 때도 있고요. "지구가 목적, 사업은 수단"이라는 파타고니아의 철학에 느낀 감동을 '이미지메이킹에 속지 않겠다'며 속으로 깎아내리기도 했죠.
근데 이런 태도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더라고요. '나 아닌 것들에 관심 쏟을 여력 없다'는 태도. 제가 참 한심하게 생각했던 태도였죠. 그 태도와 얼마나 달랐나. '나만 아니면 돼'라는 각자도생 이데올로기는 오직 생존에 직결된 문제일 때 매우 제한적으로 이해받아야 하지 않나. '살아남는 것'이 아닌 '살아가는 것'에 있어서는 '나 아닌 것들에 쏟는 관심'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문제 아닌가. '나에게만 관심을 쏟아야 겨우 살아남는 사람들'도 결국 나머지 사람들의 도움으로 살아갈 힘을 얻는 거 아닌가.
지난주에 제가 '격려하는 마음도 능력'이라고 썼었죠. 그런 마음의 폭을 넓히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결국 '지구를 지켜라'라는 미션을 깊이 있게 실천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일상 속에서 지구 지키기와 일하면서 나 지키기 사이엔 서로 닮은 구석이 많은 것 같아요. 나의 노력이 눈에 띄는 결과로 이어지기 어렵고, 그래서 “이래봤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괜한 심술을 부리기 쉽죠.
무엇보다도 종종 모순에 빠지게 된다는 점이 가장 닮아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환경을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샴푸를 쓰고, 진부한 건 싫다고 말하면서도 일하면서는 시간에 쫓겨 해오던 걸 그대로 답습하게 되기도 하는 모순적인 존재잖아요.
모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생각하면 자괴감이 들 때도 많지만 모두가 모순적이라 생각하면 자포자기를 피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서로 모순을 비웃지 않는 최선으로 지구에서 밥벌이하는 시간이 조금 더 길어지길 바라봅니다.
"당신의 집에 에코백이 3개 이상 있다면 그것은 더이상 에코백이 아니다." 이름부터 친환경을 온몸으로 피력하는 에코백이 실제로는 비닐봉지보다 더 많은 자원을 낭비하게 만든다는 거죠. 환경보호에 도움이 되려면 에코백을 적어도 130번 이상 사용해야 한다는 기사도 여러 번 본 적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머리로는 알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환경보호도 그중 하나일 겁니다. (제가 설거지하면서 낭비하는 물이 얼마나 많은데... 비닐봉지 사용에 벌벌 떠는 게 참 어불성설인 거죠.)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제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뭐라도 해야겠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망하는 것보다는 뭐라도 하고 망하는 게 덜 후회될 테니까요. 일단 저는 옷장에 박힌 저 에코백들을 친구들에게 나누는 일부터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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