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 : 파주
나른한 주말의 평화를 깬 건 한 통의 전화였다. 스마트폰 화면에는 '집주인님 박OO님'이라고 적힌 화면이 떠있었다. 수신을 재촉하는 듯 진동이 산만하게 울렸지만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자고로 임대인과 세입자는 좋은 일로 연락하는 사이가 아니니까. 한숨을 내신 뒤에 불안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집주인은 쉬는 날 연락해서 미안하다며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부동산 중개인과 함께 누군가가 집을 보러 올 거라고 통보했다. 나는 지금 전화하신 게 "OO오피스텔 XXX호가 맞나요?"라고 물었고 이미 건물 바로 옆 부동산에 집을 보러 온 사람이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을 이렇게 갑자기 판다고 선언하다니, 이 집이 '내 집'이 아니라는 사실이 새삼 실감났다.
통화를 하며 방으로 시선을 옮겼다. 사방으로 널린 물건들 때문에 평소보다 집이 좁아 보였다. 불청객이래도 내 공간을 보여주는 것이니 대강 정리해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5분 정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곤 전화를 끊었다. 계획은 늘 있었지만 행동에 옮기기를 한참 미뤄둔 집정리에 착수했다. 짐이 많지는 않았지만 잡다한 물건이 산재해 있어 적지 않은 노동을 해야 했다. 작은 물건들은 서랍 안에 쓸어 넣었고, 큰 것들은 복층 구석에 몰아두었다. 쉴 새 없이 1층과 2층을 오가며 온갖 생각이 스쳐갔다. 왜 집주인은 집을 팔 계획이라고 언질도 주지 않은 걸까. 집을 보여줄 때 세입자는 어떤 옷을 입고 있어야 할까. 나는 왜 임대인를 집주인'님'으로 저장해 둔 걸까. 스스로에게 되물었지만 답을 알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벨소리가 들렸다. 삼대 가족이 모두 동행한 모양인지 인터폰 너머로 대여섯 명은 넘어 보이는 인원이 있었다. 얼렁뚱땅 인사를 나누곤 한쪽 구석에 멀찍이 비켜섰다. 편하게 집을 살펴보라는 나름의 배려였다. 많은 사람이 집을 둘러보기에는 공간이 그리 크지 않아서 할머니와 손자로 보이는 이들은 신발장에서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어야 했다. 행여 쿰쿰한 냄새라도 날까 싶어 온방에 섬유탈취제를 난사했는데 향이 과하다는 느낌이 스쳤다. 조금만 뿌릴 걸이라며 후회했지만 그럴수록 농도 짙은 페브리즈 향이 코끝에 닿았다.
웬만큼 친한 친구가 아니면 집으로 초대하지도 않는데, 낯선 사람 여럿이 집안 곳곳을 검사하듯 하니 무언가를 빼앗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가장으로 보이는 남자는 빌트인 가구를 자랑하려는 부동산 업자의 설명을 '자신이 건설업에 종사해 척 보면 안다'며 말을 끊었다. 집주인 후보로 가장 유력해 보인 중년 남성은 만족한 표정을 띤 채 돌아갔다. 겨우 삼 분 남짓 한 시간이었지만 타바타를 두어 세트 뛴 것처럼 탈진해버렸다. 신발을 챙겨신던 부동산 업자는 '집을 잘 꾸며 놓고 사시네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 순간 집을 괜히 치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집주인님'이 될지도 모르는 불청객이 다녀간 그날 지독한 악몽을 꿨다. 몇 개월 뒤 자신이 살 거라며 집을 비워달라는 전화가 왔고, 출근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이사 갈 곳을 급하게 찾아다니는 꿈을. 그저 꿈이 아니라 조만간 현실로 닥칠지 모른다는 생각도 스쳤다. 지금 누워있는 이 집도 몇 개월 새에 전세 보증금이 30%도 넘게 올랐으니까. 한동안 침대에 누울 때마다 도시난민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막연한 불안이 엄습했다.
'어디로 가야하죠 아저씨'
친구들과 이직을 고민하며 자조적으로 흥얼거리던 이 노랫말에 이제 리듬감을 부여할 수 없었다. 행선지를 농담처럼 되묻기에는 유예하고 있던 진짜 고통을 진하게 체감했기 때문이다. 2년마다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해야만 하는 도시난민의 고통. 이제는 정말로 현실을 직면하고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기였다.
꿈에서 깨면 새벽녘이었다.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는 시간이. 뭐라도 해야지 싶어 직방 어플을 켰다. 세입자를 기다리는 집은 수백 채였지만 내 수중의 돈으로 조건을 맞출 수 있는 방은 어느 곳도 없었다. 주인 없는 방도 쓸쓸할 텐데. 나를 세입자로 들이면 블라인드도 내 손으로 달고 먼지도 보이는 족족 잘 청소할 텐데. 비워두는 것보다는 '천생 집돌이인 내가 들어가 사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라며 뻔뻔하게 발을 들이고 싶었다. 몇 주 동안 직방을 전전하며 끝도 없이 불안을 키웠다.
산책이라도 다녀오면 나을까 싶어 집을 나섰다. 행선지는 지하철로 한 정거장 거리에 있는 동네였다. '정갈하다'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뉴타운에는 주상복합 오피스텔과 아파트 사이로 개천이 흐르고, 그 옆으로는 매끈한 산책로가 있었다. 저 건물은 얼마일까. 괜한 호기심으로 억 소리 나는 시세표를 확인하고 말았다. 지금 걷고 있는 이 산책로 값도 분명 아파트 값에 더해진 거겠지. 눈옆으로 흐르는 땀방울을 훔치며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집에 오는 길에 우편함에 쌓인 종이뭉치를 발견했다. 전세대출 이자와 관리비, 가스비를 납부하라는 고지서였다. 한 달 주기로 성실하게 돌아오는 이 고지서를 보면서 '숨만 쉬어도 돈'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하염없이 직방만 드나드는 나는, 매달 시간에 맞춰 돌아오는 이 고지서들보다 성실하게 살고 있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
내게 '숨만 쉬어도 돈'이라는 말을 알려준 사람은 이전에 다니던 회사의 과장님이었다. 서울 집값의 매서움을 알지 못하던 3년 전, 내일 이사를 한다는 그에게 "집을 사신 거예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나의 멍청한 질문에 과장님은 그보다 더 시니컬할 수 없는 분위기로 말했다. "야, 서울에서는 원래 남의 집에 사는 거야." 지난한 전세대출의 과정과 도시난민의 불안을 한바탕 겪고 나자, 당시에 왜 그렇게 차갑게 답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 됐다.
서랍 구석에 웅크려있던 전세계약서를 찾았다. 다음 계약서 갱신까지 내게 주어진 시간은 7개월 남짓. 정말, 어디로 가야하죠 아저씨. 부동산에서 우는 손님은 내가 처음이 될지도 모르겠다.
지난해 여름 서울로 직장을 옮기면서 전세집을 잡아야 했어요. 잠깐 고민하는 사이 500만원, 1000만원이 오르더라구요. 오르는 건 양반이고 괜찮은 집은 모두 누군가 발빠르게 채어가버리고 남은 건 기괴하게 뒤틀린 2층집이나 부엌과 베란다만 있는 전천후 오피스텔 뿐이었어요.
다행히 운이 좋아 지금 머물고 있는 신축 원룸을 계약할 수 있었지만 그때의 기억은 서울에서 주거를 해결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이정표로 남아있네요. 그래서 파주님의 고민에 더욱 공감이 가요.
가장 아늑하고 내 것이어야 할 공간이 나에게서 멀어지는 감정은 사람을 참 외롭게 만드는 거 같아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분명한 건 파주님은 지금 집과 함께 매일 최선을 다 했고 감정에 충실했으며 몸에 귀를 기울였고 늘 밤새 풀칠레터를 썼죠. 그것만으로도 파주님은 누구에게도 물을 필요없이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지금 제 방에는 파주님이 지난 가을 준 이사 축하 선물이 놓여있어요. 이번에는 제가 축하선물을 전할 타이밍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요.
집들이를 영어로 'house-warming'이라고 한답니다. 단어가 참 예쁘지 않나요. 바닥에 벽 세우고 지붕 얹는다고 다 집인 게 아니라, 거기에 인간의 체온이 깃들어야 비로소 집이 된다는 뜻 같아서 좋더라고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제 삶에서 '혼자만의 집'은 드물었네요. 이십 년이 넘도록 동생과 함께 쓴 방, 2인실 기숙사,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살던 대학 시절 자취방, 셰어하우스, 거기에 파주 님께 얹혀 살았던 좁은 원룸까지! 죄다 과거인 만큼 이미 미화됐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즐거웠던 기억이 많네요.
많은데, 어쩐지 그 즐거움들에서는 불안함이 묻어나옵니다. 떠날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래요. 앞으로 이곳에 머물 수 있는 날을 헤아린 다음에야 비로소 지금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적어볼 수 있었으니까요. '한계'라는 감각은 항상 씁쓸함을 남기더라고요. 설사 극복해 지나온 것이라 할지라도. 뭐, 그건 그거고. 어쨌든 저는 지금 집도 상당히 마음에 듭니다. 아직 계약 기간이 일 년 반이나 남아서 그런 거겠지만, 머리 아프니 내년에 생각할래요. 지금은 '다음 집은 이런 데로 가야지!' 꿈꾸기 바쁘니까요.
집(엄밀히 말하면 방이지만)만큼 모두에게 서늘한 주제가 또 있을까요. 처음 사회에 발을 내딛었을 때 제가 방향감각을 잃었던 이유 중엔 분명 서울의 방값도 있었던 것 같아요. 내 삶의 의미를 찾고 기반을 꾸리기 위해서 일을 시작한건데, 회사일은 결국엔 남일이고 남일 해주고 받은 돈은 남의 방 쓰는 값으로 나가니 이게 뭔가 싶었죠. 그래서 그냥 고향으로 탈주해버렸습니다.
1년 정도 지난 지금, 그 탈주가 합리적인 선택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용기있었던건지, 용기가 없었던 건지도 잘 모르겠구요. 여전히 마음 속으로 ‘어디로 가야하죠 아저씨’를 되뇌입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태어난 곳이 서울이 아니라 하더라도-살다보면 서울에 남을 것인지 떠날 것인지를 결정해야하는 순간을 겪어야 하는지도 모르죠.
저는 꽤 낙관적인 편이라 어느 쪽을 고르던 우리에겐 그 선택을 결국 옳은 것으로 만들 힘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그 과정이 조금만 덜 가혹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무쪼록 파주님께 행운이 따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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