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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전투력은 얼마입니까? [밥벌이 에세이]

밥벌이 에세이

by 풀칠러 2021. 8. 12.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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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마감도비

 

직장인에게 체력이란 무엇일까. 제목에서 살벌하게 ‘전투력’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개인적으로 체력은 직장인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닌가 한다. 사회생활을 위한 사교성도, 업무 능률을 높이기 위한 집중력도 결국은 다 체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풀칠을 지난해부터 읽은 풀칠러라면 언제부턴가 마감도비의 캐리커처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챘을 것이다.(일러스트 담당 야망백수님의 예리한 관찰!)

평소 운동을 좋아하는 성격이지만 지난해 이직을 하고 나서부터 건강이 급격하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이전보다 업무량이 많아졌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도무지 운동을 할 수가 없었다. 얼추 적응이 끝난 뒤에도 일과 운동을 병행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여러 차례 번아웃도 겪었다.(구구절절한 사연은 풀칠 16호 ‘'건강'이라는, 황금알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진 맙시다’와 36호 ‘나를 버리지 말아요’에 담겨있다.)

그리고 코로나19가 결정적이었다. 지난해 11월부터 모든 실내 체육시설이 문을 닫거나 운영 시간이 제한되면서 짬을 내 운동을 하는 것마저 어려워졌다. 처음에는 운동을 할 수 없게 되자 조급한 마음이 들었지만 차츰 몸은 활동 감소에 적응해갔다.

체력을 다시 길러야겠다고 절감한 건 볼록해진 배와 함께 양껏 나빠진 안색 때문이었다. 주위에서 왜소해졌다는 말을 자주 들었고 가끔 본가에 내려갔을 때 어머니는 무척 안타까워하시며 “마감도비야, 니 얼굴이 왜 이래 상했노?”와 같은 말씀을 하시며 고봉밥을 떠주셨다.(어머니, 제 얼굴은 날 때부터 상했습니다..)

게다가 외근을 다니며 계단을 오르내리는 동안 너무 숨가빠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내 상태가 예전과 같지 않음을 더욱 통감하게 됐다.

이러한 연유로. 최근에는 달리기를 하고 있다. 더 정확하게는 달리기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야근과 회식 등을 제외하면 사실 실제로 달리는 횟수는 일주일에 많아야 3번 정도지만 말이다.

계기는 김상민 작가의 ‘아무튼, 달리기’라는 책을 읽으면서다. 원래부터 아무튼 시리즈를 좋아하긴 했지만 이 책을 만난 건 행운이라고 여겨질 정도였다. 직장인의 달리기, 라는 주제에 격한 동기부여가 됐고 서문을 읽은 그날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는데 그날의 러닝에서 버거움과 뿌듯함을 동시에 느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시작한 달리기는 여전히 좌충우돌이다. 그래도 뿌듯한 점이 있따면 처음에는 3km도 허덕이던 내가 5km와 7km를 넘어 최근에는 10km 달리기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물론, 이건 컨디션이 좋은 주말에나 가능하지만. 하루는 야근을 마치고 무리하게 심야 달리기에 나섰다가 평소의 절반도 달리지 못한 채 아픈 배를 붙잡고 주저앉아야 했다.

그래도 확실히 달리기를 하면서 체력이 나아졌다는 걸 느낀다. 야근을 더 멀쩡한 컨디션에서 하게 됐고(야근을 줄일 수 없느냐고? 어림도 없지!) 일과 중에도 몸이 조금 더 가볍다.

얼마 전 함께 저녁을 먹으며 일에 대한 대화를 나누던 중 친구(=파주님)은 이런 말을 했다.

“일을 쉬는 동안 운동하면서 체력을 기르려고 했는데 결국 이직할 때까지 하지 못 했어.”

그때 이 글의 첫 문장과 동일한 질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체력이란 무엇인가. 아니, 직장인에게 체력이란 무엇인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 나는 이렇게 말했던 거 같다. “결국 체력은 일하면서 기르는 거 같아”라고.

그렇다. 출근길에 잔뜩 충혈된 눈을 부릅떠야 하고 오후에는 커피 수혈이 필요하고 늦은 밤 퇴근길에서 지하철 안에서 혼곤히 잠드는 우리. 우리의 한계이자 전투력인 체력은 결국 매일매일 일상에 부딪히며 기를 수밖에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매오


사실 저는 “예전 같지 않다”는 말에 공감하지 못합니다. 체력은 늘 저질이었기 때문이죠. 게다가 체력을 탈탈 털어 쓸 정도로 무언가에 열중한 경험도 손에 꼽을 만큼 적기 때문에 최대치가 줄었는지, 줄었다면 얼마나 줄었는지 알기도 쉽지 않죠.

네. 조금 뻔한 말이지만 결국 이런 거에요. 예전만 못하다는 걸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언젠가 최선을 다했던 그리고 여전히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는 것. 그런 점에서 체력이란 “매일매일 일상에 부딪히며 기를 수밖에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마감도비님의 표현이 (우리가 사이어인은 아니지만) 참으로 단단한 통찰로 와닿는군요. 방금 맥주를 먹고 온 저를 혼쭐 내기 위해 심야의 동네 달리기를 나가야겠습니다.

 

야망백수


어...마감도비님..!? 일하면서 체력이 떨어졌는데, 체력은 결국 일로 길러진다니요...! 마침내 완전히 닉네임 마감도비와 혼연일체가 되어버린 겁니까! 혈중 카페인 농도가 너무 높아서 어떻게 된 거 아닙니까! 아매오님은 마감도비님 글을 보고 밤에 또 뛰러 나간다구요...? 매일 11시가 다 되어야 퇴근하는 양반들이...?!

이건 광기입니다. 일을 사랑하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체력을 일에만 복무시킨다면, 콜로세움 속 검투사의 삶과 뭐가 다를까요. 우린 생존을 위해 태어난 게 아닙니다. 삶을 향유하기 위해 태어났죠. 우리의 마음 속엔 ‘전투병 도비’와 향유...음...’향유고래’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생태계는 밸런스가 제일 중요한 거 아시죠. 도비가 향유고래를 멸종시키도록 두지 마세요.

 

파주

풀칠에서 '녀석들 중 최약체'를 맡고 있는 저로서는 마감도비님의 체력이 경이롭기만 합니다. 한창 집에서 놀고먹던 저보다 방금 마감과의 사투를 끝내고 온 마감도비님이 더 생기 있어 보였으니까요. 심지어 함께 로제떡볶이와 맥주를 곁들여 먹은 날에도 뜀박질을 하러 옆동네까지 갔죠. 같은 시간에 같은 음식을 먹은 저는 침대에 널부러져 있었는데...

탄수화물로 다져진 배를 두드리며 체력을 논하던 저에게 마감도비님은 “결국 체력은 일하면서 기르는 거 같아”라고 답했죠. 요즘 새 회사로 출근하며 7시에 벌떡벌떡 일어나는 저를 돌아보면, 역시 그 말이 옳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간 잔뜩 비축해둔 체력을 잘 써보려고 합니다. 이번에는 정말, 탈진하지 않고 오래오래 일하고 싶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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