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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로 만난 사이 [밥벌이 에세이]

밥벌이 에세이

by 풀칠러 2021. 8. 12.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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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아매오

 

회사 동료와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을 철회한다. 꼭 퇴사 이후가 아니더라도 '일로 만난 사이'는 얼마든지 '일이 아니어도 만나는 사이'가 될 수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일로 만난 사이이기 때문에 쌓을 수 있는 우정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어찌 그으렇게 사셨-나요오.

돌이켜 보면 왜 그렇게 선을 그었나 생각하게 된다. 시크하고 싶었던 걸까? 당연히 그런 건 아니고. 아마 섭섭함을 피하려고 했던 것 같다. 회사 동료란 평일에 누구보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만 오히려 그래서 주말에는 최선을 다해 피해야 하는 대상이니까. 나한테 그들이, 그들에게 내가.

이게 무슨 말이냐. 주말 동안 인스타 피드를 채우는 사진 속에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연인, 친구, 가족, 소모임 등등. 하여튼 회사 동료는 아니다. 물론 나도 주변에 사람이 없는 편은 아니다. 질척거리는 데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성격이라 징징대는 것 치고는 꽤 다양한 집단에서 관계를 쌓고 있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두고 인싸라고 했는데,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만나자 그러고 또 얼마나 자주 까이는지 몰라서 하는 얘기다. 어쨌든 그렇다.

문제는 회사에 다니기 전과 후로 내 삶의 터전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점에 있다. 경북 김천에서 나고 자랐으며 대전에서 대학교를 다닌 사람이 인천에 살면서 서울로 출퇴근하게 됐을 때 결정적으로 달라지는 점은 단순히 주민등록상 주소지나 통근 시간 같은 게 아니다. 그보다 좀 더 화학적이라고 할까. 오랜 학창시절에 걸쳐 비교적 자연스럽게 형성됐던 '관계'를 이제는 하나하나 일궈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눈 깜빡임과 숨쉬기가 갑자기 수동으로 바뀌었을 때의 불편함과 비슷하다.

사실 회사 동료는 친구가 될 가능성은 높고 난이도는 낮은 이들이다. 함께하는 시간의 절대량을 무시할 수 없으니까. 다만 혹시라도 '일로 만난 사이'라는 선을 넘으려는 나를 불편해 할 경우 내 입장에서는 평일의 관계, 그나마 자연스럽게 형성된 관계마저 잃는 셈이었다. 안 그래도 관계 좀 만들어보겠다며 발버둥 치느라 힘들어 죽겠는데 모험을 할 이유는 없었다. 관계에서 나오는 최소한의 안정성을 확보해놔야 했다. 야비하게 선수를 쳤다. 저는 회사 동료랑 굳이 사적으로 친하게 지낼 생각은 없...

회사 동료와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을 철회한다. 회사를 다니는 이유가 오직 돈 하나만 있는 게 아닌 것처럼, 회사 동료 역시 단순히 일적으로 대하는 관계가 아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말이고 누군가에겐 자연스러운 생각이겠지만, 난 그걸 얼마 전에 겨우 납득했다. 체득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계기를 살짝 밝히자면, 최근 진행한 프로젝트가 큰 영향을 미쳤다. 작은 실험으로 시작한 기획에 갖가지 의견이 따라 붙더니 어느새 홀로 감당할 수 없는 규모가 됐다. 솔직히 울 뻔했다. 스타트업 일이 원래 그런 거라고 하지만, 어려운 건 어려운 거고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내 역량은 아직 그 정도인 걸 나더러 어쩌란 말이냐.

어쩌긴 뭘 어째. 같이 해야지. 이슈 전반에 팀으로 대응했다. 저마다 역할은 있지만 매일 현황을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고 액션플랜을 짜고 체크리스트를 지워나갔다. 성과지표는 반복해서 돌아와 꽂히는 칼침 같았다. 팀워크는 그 속에서 조금씩 피어났다. 함께 대응하는 과정 자체가 일종의 세이브 포인트였다. 제대로 하는 게 맞나? 의문은 여전했지만 거기에 빠져 허우적대는 불상사는 더이상 벌어지지 않았다.

즐겁고 행복한 경험으로 시작되는 관계가 있는 반면 힘들고 답답한 상황을 견디며 시작되는 관계도 있다. 일로 만난 사이가 일이 아니어도 만나는 사이가 되는 과정은 아무래도 후자를 바탕으로 하지 않을까. 일을 하면서 피어나는 불안감이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에 울고 싶다가도 그것을 공감해주고 함께 건너가는 동료가 제공하는 감각, 그러니까 편안함과 단단함을 두루 갖춘 신뢰는 참 소중하다. 그 위에 시간을 얹어가며 요리조리 잘 가꾸어 만지다보면 결국 또 하나의 우정을 얻게 되는 것 아닐까.

 


마감도비


즐겁고 행복한 경험으로 시작되는 관계가 있는 반면 힘들고 답답한 상황을 견디며 시작되는 관계도 있다.' 한국소설의 첫 문장 같기도 하고 어느 영화의 소개글 같기도 하네요. 이번 글을 읽으면 인간 관계에 대한 아매오님의 열린 마음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사실 제가 지금 딱 이전의 아매오님과 같은 마음가짐이거든요. 함께 고생하는 동료일지라도 일로 만난 사이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말이죠. 그렇게 스스로를 돌이켜보니 먼저 회사를 떠난 사람들의 뒷모습에 조금 미안해지기도 하네요. 

어떻게 하면 일로 만난 사이에서 일이 아니어도 만나는 사이가 될 수 있을지 걱정도 들지만. 저도 아매오님을 본받아 주위에 그어놓은 선을 살짝 들어올릴까 합니다. 언젠가 저도 오더 대신 공감을 주고받는 사람이 될 수 있겠죠?

 

 

야망백수

 

‘일로 만난 사이’라...저는 직장동료는 직장동료일 뿐이라고 따로 선을 그어본 적도 없고, 팀원이랑 메신저하는게 회사 다니는 낙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이 아니어도 만나는 사이’가 될 것 같진 않네요. 일부러 꺼리는 건 아닌데, 그냥 그런 그림이 잘 안 그려져요.

교류하는 사람의 평균값이 내 모습이라고 하잖아요. 이 말이 맞다면 다양한 집단에 속해 있는 사람은 그만큼 다양한 자아를 갖는 것일 테죠. 저는 제 자아끼리 섞이는 게 싫은가봐요. 그러면 ‘일하는 야망백수’가 ‘침대 속 야망백수’, ‘밤새 술먹는 야망백수’등 별 쓸모는 없지만 제가 간직하고 싶어하는 다른 자아들을 업신여기게 될 것 같거든요.

물론 저도 동료에게 강렬한 우정을 느끼는 순간이 있지만, ‘일하는 야망백수’가 자아 생태계를 교란하는 걸 막기 위해서 무의식의 어떤 부분이 ‘일만사’가 ‘일아만사’가 되는 걸 방해하고 있다는 상상을 해봅니다. 또 모르죠, 일이 묻지 않은 내가 풍성해야 계속 일을, 직장 동료를 좋아할 수 있는지도요.

 

파주

저는 '회사동료와 친구가 될 수 없다'라는 명제를 접하기도 전에 사회에 몸을 내던졌습니다. 제멋대로 선을 넘은 일도 아주 많았죠. 지금 생각하면 이불킥 할 일도 많았지만, 그 덕분에 힘든 시절을 함께 했던 동기와는 좋은 형 동생 사이로 지내고 있습니다. 가끔씩은 서로 돈이 되는 일감을 주고받으면서요.

최근에 제 신조가 된 '확신하지 말자'는 인간관계에도 통하는 말이예요. 오늘의 관계가 미래에는 어떻게 바뀔지, 당사자조차 알지 못하니까요. 물론 가까스로 애새끼맨을 벗어난 요즘에는 멋대로 선을 넘으려 하진 않습니다. 다만 되도록 낯선 사람들에게 친절하되 솔직하게 대하려고 노력해요. 당장은 어색한 사이라도 어느 순간 찐 우정이 될지 모르잖아요? 힘든 프로젝트를 기점으로 동료와 친구가 된 아매오님의 사례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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