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풀칠러 여러분. 밥벌이 에세이레터 <풀칠>입니다. <풀칠>이 첫 돌을 맞았습니다. 흔히 글은 마감이 쓴다고 하던데, 이 말은 반절만 맞는 것 같아요. 마감보다도 마감을 기다려주는 독자가 있다는 사실이 결국엔 쓰게 만드는 것 같거든요. 읽어주시는 풀칠러님들 덕분에 1년 동안 계속 보낼 수 있었습니다.
50호는 1주년인만큼 특집호로 준비해봤습니다. 에세이 당번 따로 없이 ‘1주년’을 주제로 멤버들 넷 모두 각자 쓰고 싶은 이야기를 써 봤어요. 풀칠러님들께도 오늘이 기념할만한 하루였길 바랍니다.
그동안 읽어주셔서, 오늘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영차영차 부지런히 써 볼게요.
일단, 풀칠러님들 절 받으시죠(넙죽). 풀칠레터가 1주년을 맞이하다니 감개무량하네요. 그렇지만 첫 문장으로 ‘첫 회의가 엊그제 같은데 1년이나 이어나가게 될 줄은 몰랐어요’라는 상투적인 말을 하기에는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아서. 감사인사를 드리는 게 먼저겠죠. 저를 비롯한 풀칠 멤버들 모두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었던 거 같아요. 저희가 이 짓(?)을 한동안은 계속하게 될 거라는 걸 말이에요. 독자가 있는데 쓰지 않기란 쓰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거든요.
사실은 저도 얼마 전 지금 직장에서 1주년을 맞았어요. 물론, 가까운 사람들만 그 사실을 축하해줬을 뿐 정작 그날 하루 회사에서의 일과는 여느 때와 다름없었지만 말이에요. 그리 따뜻한 곳은 아니거든요. 신입도 아니고 경력직이 1년을 채워봤자 뭐 대수겠어요. 그냥 자기 할 일 했던 거지. 그래도 말이죠. 풀칠러들한테는 말해주고 싶었어요. 저 사실은 되게 뿌듯했거든요. 1년을 버텼다는 게 말이에요.
힘들었거든요. 사는 곳도 바뀌고 환경도 바뀌고 경력이래도 모르는 건 많지 도와줄 사람은 없지 매일 매일이 속앓이를 하던 날들이었어요. 외골수인데다 욕심은 있어가지고 남들이 보면 신기할 정도로 퇴사할 생각은 눈꼽만큼도 안 했지만 힘든 건 어쩔 수 없더라구요. 동기도 없어서 어디다가 하소연도 못하고. 얼마 전엔 그나마 회사 욕을 같이 하던 후배 한명이 퇴사했어요.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풀어보기도 하고 때로는 늦은 밤 혼자 술잔을 기울이기도 하지만. 역시 자기 얘기 들어주는 것만큼 사람을 버티게 해주는 건 없더라구요.
주니어 직장인들의 애환을 담아보자 해서 시작한 게 풀칠이에요. 지난 1년간 이런 얘기를 털어놓고 싶은 곳이었구요. 직장에서 1년을 채웠지만 회사 생활은 여전히 요령부득이에요. 일은 더 많이 맡았는데 노하우는 쌓이질 않네요. 통장 잔고도 마찬가지구요. 로또 1등을 맞지 않는 이상 앞으로의 생활은 계속 될 테고, 그건 앞으로 풀칠이 더 재밌어질 거라는 뜻이죠.
1년을 맞이하면 원래 말이 많아 지나봐요. 고마워서겠죠.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상상했던 내일이 그 모습 그대로 나타난 오늘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압도적인 삶의 변칙성 앞에 선택할 수 있는 건 그저 묵묵히 반복되는 시작과 끝을 쌓는 길뿐이었다. 하지만 축적은 의미를 만든다. 드물긴 해도 꾸준히 인스타그램에 올린 멸치 사진이 오프라인 전시회로 이어지는 사례가 분명 존재한단 말이다! 지속성과 일관성으로부터 기어코 의미를 읽어내는 호모 사피엔스의 종특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것은 꽤나 상징적이기도 하다.
나 또한 하나의 호모 사피엔스. 몇 번의 시작과 끝을 한데 그러모으는 와중에 쉼표처럼 찍어낸 의미부여의 모먼트가 일상을 떠받치고 있다는 사실을 매 순간 느낀다. 그러니까 의미부여가 날 살게 한다. 특히 풀칠이 맞은 ‘1주년’은 의미부여의 모먼트 중에서도 메인급 모먼트다. 생각해봐라. 연인과의 기념일도 1주년이 지나는 순간부터 100일 단위 행사는 간소화되지 않나. 기원전과 기원후를 나누는 그리스도의 탄생에 비견될 만하다.
직장에서 1주년을 맞은 뒤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이맘때’라는 말을 쓸 수 있게 됐다는 점이었다. 이맘때 그런 기사를 썼지, 이맘때 그런 프로젝트를 했지, 이맘때 휴가를 몰아 썼지 등등등. 직장 생활은 매우 역동적이지만 동시에 루틴한 부분도 있기 때문에 꽉 채운 1년이 주는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은 다음 단계로 나아갈 발판을 형성하곤 했다. 여기에 반복 학습 1년과 응용 학습 1년을 더하면 이직하기 딱 좋은 3년 차가 되는 것이다.
이제 풀칠도 ‘이맘때’를 쓸 수 있게 됐다. 이맘때 첫 레터를 보냈지, 이맘때 휴식기를 가졌지, 이맘때 구독자가 좀 늘었지, 등등등. 떠올릴 때마다 겸연쩍음과 부끄러움이 앞서는 1년의 시간이지만 한편으로는 이것이 나의 ‘일의 슬픔과 기쁨’에 있어서 새로운 기준점을 제시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감을 가져본다. 이제 1주년을 맞은 주니어에게 필요한 건 지난 시간에 대한 질책보다는 앞으로의 시간에 대한 응원일 테니 말이다.
언젠가 피라미드를 보러 갔었다. 동행 중엔 전직 가이드가 한명 있었다. 그는 가이드답게 아는 것도 많고 말도 많았다. 피라미드로 가는 불편한 지프 뒷자리에서 그는 내게 이집트인들이 피라미드를 지은 이유를 이야기해줬다.
이집트인들에게 사막은 무한한 공간이었다.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사막은 그들을 두렵게 했다. 이집트인들은 이 두려움을 관리하기 위해 꾀를 냈다. 원을 무서워하는 아이들이 원 안에점을 찍어두면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걸 보고 낸 묘안이었다. 사막을 알 수 없다면 사막 안에 우리가 알고 있는 무언가를 남기자. 그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거야. 그렇게 이집트인들은 피라미드를 세웠다.
피라미드 이야기가 떠오른 건 올해의 여름과 작년의 여름을 비교하다가 이 일을 시작한지 어느새 1년이 다 되어간다는 걸 알았을 때였다. 보잘 것 없는 1년이었다. 부자가 되지도 못했고, 유명해지지도 못했고, 행복을 찾지도 못했으니까 말이다. 그럭저럭 살아내는데 급급했던 1년을 돌아보는데 피라미드처럼 대단한 건축물이 떠오르다니, 이 무슨 과대망상인가 싶었다. 그러나 머릿속에 떠오른 피라미드의 상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나는 내 지난 1년이 피라미드의 옆자리를 당당히 차지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궁리를 시작했다.
일단 나는 피라미드를 인수분해해보기로 했다. 전체끼리야 비교가 안되는 것처럼 보인다지만, 세부 요소는 별 차이가 없을 수도 있으니까. 먼저 피라미드를 짓는 보통사람들의 땀과 근육통과 나의 안구건조증과 만성피로. 둘은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노동의 애환이란 점에서 본질적으론 같을 것이다. 진흙을 게고 돌덩이를 나르는 동안 가슴 속에 일었다 사라졌다하는, 피라미드가 자신들을 구원할거란 믿음과 나의 일하다보면 언젠간 행복하게 살 수 있겠지란 희망 혹은 불안. 이 둘을 나란히 두는 건 합당한 처사다. 사막에서 강가의 집으로 돌아가며 아직은 보잘것없는 돌무덤 뒤로 떨어지는 해를 보며 느낀 감정과 내가 지하철 창문으로 붉게 물든 한강을 보며 느낀 감정. 이 둘을 구별하는 건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부분의 유사성이 크니 내 1년도 피라미드 옆에 나란히 자리할 자격이 충분해 보인다.
인수분해가 억지라면, 다른 전략도 가능하다. 이 전략의 이름은 ‘도찐개찐’이다. ‘피라미드나 나의 지난 1년이나 어차피 실패이므로 도찐개찐이다!’라는 게 이 전략의 핵심 주장이다. 가이드가 얘기해준 기획의도-사막의 무한함에 대한 두려움 극복-가 참이라면, 피라미드는 실패작이다. 피라미드를 짓는다고 해서 사막이 줄어든 것도 아니고 피라미드 위에 올라간다고 해서 사막의 끝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피라미드는 그냥 거기 서 있을 뿐이다. 피라미드같은 블록버스터 기획도 실패하는 마당에 지난 내 1년이 성에 안차는 것 쯤이야 뭐 대수일까. 어쩌면 애초에 어떤 문제들은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인지도 모른다. 사막의 무한함, 계획대로 술술 풀리는 삶 같은 것들 말이다.
이제 나는 피라미드만큼이나 위대하고도 아름다운 지난 1년을 기념하기 위해 맥주 네 캔을 사고 있다. 이 맥주 네 캔의 크기는 우주의 시각에서 보면 피라미드와 별 차이도 나지 않을 것이다. 이집트인들이 무한한 사막에 피라미드를 세웠듯이, 나는 어떻게 흘러가는 지 알 수 없는 인생의 선 위에 맥주 네 캔으로 성대한 축제를 열 것이다.
집에 돌아가면 최선을 다해서 맥주를 마실 거다. 분명 한 캔도 다 마시지 못하고 잠들겠지만 오늘은 1주년이니까 평소보다 조금 더 진심으로 또 조금은 일렁이는 마음으로 마실 것이다. 이렇게 별 것도 아닌 일을 기념하며 삶에 눈금을 남기는 순간을 이어 만들어진 무늬가 결국엔 내 삶이겠거니, 우리 모두가 이렇게 저마다 우주의 무한함 속에서도 절대 뭉그러지지 않을 고유한 무늬를 만드는 중이겠거니 생각하며 집으로 가는 마지막 골목을 걸었다. 그러고보니 피라미드를 본 날에도 맥주를 마셨던 것 같다.
'뭐해 먹고살지'를 되뇌며 푸념이라도 통 크게 해보자고 시작한 프로젝트가 벌써 1주년이라니. 뭐를 해 먹고살지는 아직도 고민이고, 그냥저냥 밥벌이하며 연명하는 것도 여전하다.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게 익숙지 않아서일까. 1주년이라는 단어가 낯설면서도 특별하게 느껴진다.
직장인의 자아를 쓰고 나면 1주년의 의미가 또렷해진다. 1주년이라 함은 회사에 다녔다고 치면 15일의 연차와 퇴직금을 확보했다는 의미. 그렇다면 슬슬 다른 곳으로 점프를 노려야 할 타이밍이라는 건데... 애석하게도 뭘 해 먹고살지 아직까지도 불분명하기 때문에 당분간은 풀칠을 보내며 깊은 한숨을 더 내쉬어야 한다.
풀칠을 연재해 온 고작 일 년 사이에 바뀐 게 뭐가 있겠냐 싶었지만, 하나 둘 꼽아보니 생각보다 꽤나 많았다. 잡소리라도 일주일 간격으로 꾸준히 써왔다는 것과 그 개똥철학을 적어내기 위해 묵혀두었던 고통과 후회를 제대로 마주했다는 것. 물론 포트폴리오에는 절대 적어낼 수 없는 수치와 치욕의 역사지만, 그것이 '나'라는 인간이 어떤 종류의 놈팽이인지를 알게 되는데 많은 힌트를 줬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풀칠 덕분에 익명의 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꽤나 많이. 얼굴도 이름도 모르고 고작 아는 건 이메일 주소뿐이지만 함께 일에 대해 푸념하고 이야기하는 사이다. 우리는 이들을 풀칠러라 부르는데, 매번 당일 마감에 쫓기면서도 끈덕지게 풀칠을 해올 수 있던 건 함께 에세이를 보내는 세 명의 친구와 에세이를 읽어주는 풀칠러들 덕분이라고 믿는다.
뭘 해 먹고살지는 늘 고민이다. 고민이 십 년쯤 지속되니 이제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뭘 해 먹고살지'에 대한 고민을 동력으로 50호까지는 어떻게든 왔다. 솔직히 풀칠 500호 같은 건 새빨간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일단 100호까지는 어떻게든 함께 보내고 싶다. 그러니, 다음 주 에세이 당번인 미래의 나에게도 건투를 빈다.
얼마 전 휴재 소식을 알린 모 레터에 답장을 보낸 적이 있다. 살짝 취기가 돈 상태로 보냈던 것이라 꽤나 느끼한 멘트를 치고 말았는데, 요약하자면 '매일 행복할 수는 없으니 대신에 자주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자꾸 애틋하게 말하니까 무슨 연재 종료를 알리는 작별 인사처럼 느껴지네요. 50호까지 달려오는 동안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수요일에 찾아갈 테니 자주 만나요. 그리고, 행복도 자주자주 느끼시길 바랍니다.
<풀칠>을 소개합니다 (0) | 2021.08.05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