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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누구인지 말해주세요 [밥벌이 에세이]

밥벌이 에세이

by 풀칠러 2021. 8. 13.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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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마감도비

 

어느 날 점심, 비슷한 연차의 동료들과 밥을 먹는 자리에서 후배는 선언하듯이 본인을 MBTI 박사라고 소개했다.(한 풀칠 멤버의 말에 따르면 어느 조직에나 한 명씩 있는 ‘도사’ 캐릭터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후배는 자기 주변 사람들의 MBTI를 다 알아맞힐 수 있다고 했다. 그러자 호기심이 발동한 우리는 회사 내 한명 한명을 떠올리며 MBTI를 유추하기 시작했고 해석에 해석을 얹기 시작했다.

“OO선배는 아마 ISFP일거야. 맞아, 맞아. 그래서 그때 전체 회의에서 @#$$%@#$~&.” 

뭐, 대충 그런 느낌. 우리의 MBTI 맞추기가 절정에 다다를 즈음, 화살은 그 자리에 앉은 나에게로 향했다. 

“선배, MTBI가 뭐에요?”

아니, 다 맞출 수 있다면서? 게다가 나는 제일 쉬운데? 나는 뭐 그런 싱거운 질문을 하냐는 투로 웃으며 대답했다.

“저 인프피(INFP)에요.”

그랬더니 후배가 말 그대로 아연실색했다.

“거짓말이죠? 선배는 누가 봐도 ISTJ에요.”

 속으로는 ‘ISTJ가 뭐야?’는 생각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아, 그래요? 신기하네” 하면서 짐짓 쾌활한 척 이야기를 넘겼다. 그렇지만 내 머릿속 한편에는 ‘내가 INFP가 아니란 말야??’하는 커다란 절규 비슷한 물음이 떠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INFP라는 사실은 그동안 나 스스로를 가장 잘 규명하는 프레임 중에 하나였기 때문이다.

 직장에서의 내 MBTI가 다를 수 있다는 건 생각해본 적 없는 관점이었다. 물론, 자신이 생각하는 MBTI와 남이 생각하는 나의 MBTI는 다를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게 직장 동료가 바라보는 MBTI라면 또 다른 의미가 있을 거 같았다. 회사로 돌아와 나는 당장 (몰래) ‘ISTJ’를 검색했다. 16가지 성격 유형 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이 정리 되어 있었다 : 청렴결백한 논리주의자.

‘음... 내가 회사에서 순교자로 보일만한 일을 한 적이 있었나?’

그 밑에 유형별 위인의 명언을 읽어보니

<내가 본 바에 의하면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 한 명이면 족한 일을 둘이서 수행하면 될 일도 안 되거니와, 셋 이상이 하는 경우에는 일이 전혀 성사되지 않더군. - 조지 워싱턴>

‘아, 이거지. 이거지!!’ 나는 앉은 자리에서 내적으로 물개박수를 쳤다. 단독적으로 일을 진행하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단번에 설득되고 말았던 것. ‘그렇구나, 나는 일에 있어서는 INFP가 아니라 ISTJ 구나’ 새로운 자아를 찾게 된 날이었다.

한순간 ISTJ로 거듭난 나는 좀 더 많은 설명을 찾아보기로 했다. 책임감 있는 현실주의자, 낯가림이 심하다(그렇지, 그렇지), 주어진 업무나 책임을 끝까지 완수한다(예를 들면, 새벽 마감...?), 원칙을 중시한다(그, 그런가?), 실수를 참지 못한다(티가 났나?), 자신이 직접 일의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그래서 마감도비를 못 벗어나지), 사고방식이 로봇 같다(?), 그리고 ISTJ 중에 꼰대가 많다.(나, 후배에게 당해버린 건가?)

무척 흥미로웠다. MBTI라는 틀이 아니더라도 ‘회사에서는 내가 이렇게 비춰질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 보면 나는 조직 내에서 채도가 많이 다운된 회색 인간이었다. ‘넵병’ 말기 환자이기도 하고. 오죽하면 회사 단체카톡방(이 있다. 인류는 아직 전근대적 야만과 작별하지 못한 셈)에서 나에게 ‘넵’ 금지령이 내려졌을 지경이니까.

그리고 말수가 적고 내 얘기를 먼저 꺼내지 않는 답답한 인간이기도 했다. 한번은 명리학을 공부했다며 주변 사람들의 사주를 봐주는 선배마저 회식 자리에서 나에게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좋은 편인데, 너는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는 그 때 와인을 마시고 있었으므로 나는 눈으로는 웃으면서도 손으로는 인스타 스토리에 예쁜 잔에 담긴 와인 사진을 올리고 있었다. 이 조명... 온도... 습도...

그런데 직장인으로서 나의 MBTI가 있다는 사실은 직장에서 나라는 사람이 무색무취하지 않다는 얘기인 것도 같아서 조금 감격스러웠다. 바라봐주는 사람이 있어야 ‘그 무언가’로 규정될 수 있는 법이니까. 혼자서 책임을 지려고 하는 나쁜 버릇을 고쳐야겠다는 약간의 훈계도 됐고 말이다. 이제 협력을 배워야지!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에서 극 중 인물인 리어왕은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라고 탄식한다. 남도 나를 모르고 나도 나를 모른다는 얘기다. 그전까지 나는 스스로 리어왕을 자처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직장에서 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자 누구인가! 그러나 이제 나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안다. 우리는 저마다의 자리에서 연극을 하고 있고, 함께 일하는 배우들은 그 사실을 공유하고 있으니까. 연기는 나쁜 게 아니고, 우리는 그저 자신에게 잘 맞는 배역을 맡으면 족할 뿐이다. 그 연극의 장르가 희극이면 가장 좋고.

셰익스피어의 또 다른 작품인 <겨울 이야기>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내가 본래 정직한 건 아니지만 가끔 우연히 정직할 때도 있다(Though I am not naturally honest, I am so sometimes by chance.)”

나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아매오


얼마 전에 읽은 오하림 카피라이터의 책에 이런 구절이 나와요. “연인과의 모든 대화는 목적이 문제 해결에 있지 않기 때문”에 “명쾌한 해답보다는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잊게 만드는 장르의 변화나 말도 안 되는 비유, 엄청난 비약 같은” 것이 잘 먹힌다고요.

 저는 MBTI도 그런 거라 생각합니다. 좋은 스몰토크 소재죠. 사실 저는 아직도 제 MBTI에서 E와 J 사이 두 알파벳이 무엇인지 헷갈려 한답니다. ‘사교적인 외교관’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는데, 이것만 얘기해도 알파벳이 튀어나오는 사람들이 자리에 꼭 하나씩 있더라고요.

 MBTI의 과학성은 그렇다 치고. 마감도비 님 말대로 “직장에서 나라는 사람이 무색무취하지 않다”는 걸 증명해주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것 같아요. 어차피 사람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는 건 동서고금 어려운 일이었으니까요. 음, 일단 제 알파벳부터 다시 알아봐야겠습니다.

 

야망백수


제목이 의미심장하네요. MBTI가 유사과학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유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나는 누구지?’라는 궁금증이 터져나오는 시기에 잘 올라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거든요. ‘MZ세대’는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원한다’고 하고, “나 이런거 좋아하네”를 외치며 새로운 취향을 발견하고, 나의 서사로 ‘퍼스널브랜딩’을 하는 시대잖아요. ‘내가 미처 몰랐던 나’를 찾는 것이 행복과 사명에 직결되는 문제라는 인식이 폭넓게 공유되는 와중에,  MBTI가 ‘너의 성격을 알려줄게’라고 말하며 접근성이 좋은 위치에서 적당히 믿음직스런 외양으로 등장한 셈이죠.

자아탐구의 물결 위에서 , '일하는 자아'와 MBTI를 접목시킨 마감도비님의 에세이를 읽다보니 문득 이런 궁금증이 듭니다 :  MBTI는 성격 테스트다. 그런데 성격이란 말은 우리 안에 본질적이고 고정된 소프트웨어가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나? 이 오해와 자아실현으로서의 일이 합쳐지면, 우리는 자발적으로 성격을 일에 맞춰 최적화하려들까?

몇몇 장면들이 떠오릅니다. 인적성 테스트를 연습하고, MBTI를 서류전형에 포함한 채용공고가 올라오고, 지식인엔 다른 MBTI에 맞는 직업이 장래희망인데 어떻게하면 MBTI를 바꿀 수 있냐는 질문이 올라옵니다. 이 모든 광경은 좀 징후적입니다.

자아탐구와 회사-최적화가 동일해진다면,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덕업일치일까요, 아니면 극한의 자기착취일까요? (저의 MBTI는 ENTP라네유..ㅎㅎ) 



 

파주

직장인으로서의 나라는 건 쉽게 말해 '주말의 나'와 구별되는, 또 하나의 사회적 자아라는 거겠죠? '사회적 자아'라고 거창하게 얘기하니 왠지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무언가에 굴복하는 느낌이네요. 그럼 사회적 자아를 부캐라고 바꿔 부르는 건 어떨까요. 어찌 됐든 둘 다 다른 자아(캐릭터)로 활동한다는 거니까요. 마음이 한결 더 가벼워지는 기분도 듭니다.

그러니까 웬만하면 부캐가 하나쯤은 있는 셈이죠. 이왕 만드는 거라면, 그나마 가진 것 중 보여주고 싶은 모습으로만 부캐를 빚어내고 싶네요. 그래서 요즘 저는 출근길에 고막을 뿅뿅-하고 울리는 음악을 들으며 마음의 워밍업을 합니다. 내면에 자리한 외향성을 긁어모으는 일종의 의식이랄까요. 본캐로는 절대 불가능했던, 유쾌하고 유능한 캐릭터를 저도 가지고 싶은 열망이 있으니까요. 껄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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