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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 못 고치는 어른 [밥벌이 에세이]

밥벌이 에세이

by 풀칠러 2021. 8. 6.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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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야망백수

 

1
 마침내 직장을 잡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방을 얻고 나니 나도 이제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힘으로 사냥하고 서식지를 가진 동물이 성체로 대접받듯이, 돈이야 좀 적긴 하지만 어쨌든 밥벌이를 하러 들락날락할 공간을 갖게 되었으니 어른이 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성싶었다. 일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던 처음 몇 주가 지나가니 새로운 일상도 그럭저럭 모습을 갖춰갔다. '제대로 해놓고 산다'까진 아니어도 퇴근길에 지하철역에서 사온 오뎅을 볶고, 락앤락에 담아 냉장고에 넣고 나면 이제 나도 정말 자립을, 홀로서기를 해냈다는 뿌듯함까지 느껴지곤 했다.

 그러나 이 자립의 허니문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시간 때문이었다. 갑자기 가속도가 붙어버린 삶에서 나는 시간 결핍에 시달렸다. 노동시장에다 자립의 대가로 시간을 갖다 팔았으니 어쩔 수 없는 결과로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그래도 이건 뭔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고개를 쳐들었다. 눈을 뜨면 지하로 낑겨들어가 한 시간을 흔들리다가 건물에 들어가 종일 앉아있다 해가지면 다시 지하로 향하는 삶. 퇴근길에 사 먹는 오뎅만이 거의 유일한 낙인 삶이 과연 정상인가. ROAS니 CPM이니 숫자들만 들여다보는데 쓰고 남는 자투리 시간은 과연 밥을 지어먹고 빨래를 하고 산책을 하고 누군가와 우정을 나누기에 충분한가. 이런 의문들이 쌓이는 속도는 냉장고에 밑반찬이 쌓이는 속도를 진즉에 추월해버렸다. 이제 쌓이는 건 라면 국물이 벌겋게 눌어붙은 설거지거리였다.

2
 그렇게 성에 차지 않는 나날을 쌓아가던 중, 기어이 사건이 터졌다. 밀린 설거지를 하다 수채에 쌓인 음식물 쓰레기를 급한 대로 변기에 버린 것이 화근이었다. 퉁퉁 불어버린 면발들 사이에 숨어있던 양파심에 변기는 그대로 기능을 상실해버렸다.

 세상엔 남들이 보면 별일 아니지만 당사자에겐 일상을 무너지게 하는 트리거가 되는 순간이 있는데, 내겐 이 변기 사건이 꼭 그랬다. 한때는 자회사 몰에서 파는 신통찮은 가전제품들로 방을 채워가며 잘 살아보겠다는 열정이 불태웠건만, 변기 사건을 기점으로 그 모든 열정이 사그라들었다. 변기는 이틀이 지나자 어디서 물이 새는지 쉴 새 없이 물소리를 내며 말라갔다. 끊임없이 새는 물과 말라버린 변기. 애써 꾸린 나의 자립에 대한 애정의 현주소를 보는 듯했다.

 누군가는 변기 쯤이야 유난 떨 거 없이 뚫으면 그만 아니냐고 하겠지만 그렇게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용을 쓰다 뚜러뻥 손잡이를 부러뜨리고 말았을 때 변기를 뚫는 일은 사람을 불러야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되었고, 사람을 부른다는 건 곧 얼마간의 시간을 할애함을 의미하는데, 앞서 말했듯이 이 시간이라는 것을 마련하기가 도통 쉽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평일엔 퇴근하고 집에 오면 배관공도 퇴근했을 시간이니 불가능하고, 주말에 사람을 불러야만 할 텐데 주말엔 시간을 최대한 밀도 있게 쓰려고 집 밖으로 나도는 편이라 역시 변기에 쓸 시간이 없었다. 고장 난 변기는 시간 부족이라는 내 일상이 갖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는 상징물이었다.

 그래서 난 그냥 변기 없이 사는 삶에 적응하기로 했다. ‘구조적 문제’라는 단어는 해결할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을 뜻하기도 하므로. 막상 살아보니 그럭저럭 살만했다. 평일엔 회사에서, 주말엔 카페에서, 급할 땐 집에서 100미터 떨어진 지하철역에서 볼일을 해결했다. 그렇게 살다보니 변기를 고치는 일은 꼭 필요하지도 않은 일에 헤르미온느의 모래시계를 쓰는, 뭐랄까 엄청난 자원의 낭비로까지 여겨질 정도였다.

 

3
 변기 없는 생활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어느 날, 회사에서 동료들을 웃길 요량으로 이 이야기를 했다. 직장인들은 대개 블랙코미디를 좋아하는 법이니까. 동료들 대부분이 어떻게 그렇게까지 대충 살 수 있냐며 웃었지만 개중 한 명은 쥐스킨트의 소설 <비둘기>가 생각난다고 했다. <비둘기>에 등장하는 주인공 노인은 방 한 칸이 평생의 유일한 성과인 인물이다. 노인은 어느 날 아침 방 앞 복도에서 비둘기를 발견한다. 노인은 비둘기가 싫었지만 죽일 수도 치울 수도 없었다. 관리인에게 말하긴 했지만 왠지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것 같았다. 노인은 그날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노숙을 했고, 잠이 들기 직전엔 자살을 결심한다. 이야기의 유사성에 왠지 모르게 찔려서 항변했다. “저는 자살을 생각하고 있진 않은데요.” 다른 동료가 덧붙인다. “그러고 보니 집안일 미루는 게 우울증 초기 증상이래요.”

 그날, 비둘기와 우울증에 대해 생각하며 다시 변기 앞에 섰다. 변기는 여전히 물소리를 내며 말라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레버를 눌러봤지만 헛돌 뿐이었다. 아무래도 이 방에서 새로 짓던 일상의 의미를 ‘자립과 어른 되기’에서 찾으려는 시도는 실패했다는 생각이 든다. 진짜 어른이라면 이런 문제쯤이야 아무렇지도 않게 해결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다가 문득 남들은 변기가 고장 나면 그걸 해결하는 데까지 평균 며칠이 걸릴지가 궁금해졌다. 그저께 점심시간에 팀장님은 집에 도착하니까 겨우 8시밖에 안 돼서 빨래하고 일찍 누워서 잤다, 너무 행복했다, 라고 복권이라도 당첨된 것 같은 어투로 말했었는데, 고작 빨래하고 일찍 누워서 잔거에 그정도 텐션이라면 고장난 변기를 고치기까진 최소 일주일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일주일이라.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이런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아니 무슨 어른이 변기 고치는데 일주일 씩이나 걸려? 애도 아니고?(20.10.14)


마감도비


‘의문들이 쌓이는 속도는 냉장고에 밑반찬이 쌓이는 속도를 진즉에 추월해버렸다’는 문장이 인상 깊네요. 저도 대학생 땐 홀로서기를 선망했던 거 같아요. 그때는 특히 일을 하고 싶었어요. 나 같은 게 취업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같은 생각을 하면서요. 그래서 그때는 어엿한 직장인이 되고 조직에 소속되고 맡아야 하는 업무가 있다면, 그게 ‘한 사람분의 몫’을 잘 해내는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일은 재미있지만 그 일을 즐길 ‘내’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요즘, 저에게 필요한 건 한 사람분의 몫이 아니라 한 사람분의 존중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아매오


이번엔 제가 전 룸메이트로서 메시지를 남길 차례군요. 야망백수님이 탈주한 공간에는 몇 벌의 옷가지와 매트, 이불, 신통찮은 가전제품 몇 대가 남았습니다. 이 집에선 아직 야망백수님의 온기가 느껴집니다. 놀랍게도 고장난 변기에도요. 다만 그때와 달리 변기는 제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변기 안의 줄이 끊어진 게 문제였는데, 그걸 새로 사서 갈기 귀찮아서 그냥 묶었더니 잘 되더라고요. 임시방편으로도 그럭저럭 살 수 있게 되니 완전한 수리는 제 일상 속 우선순위 리스트에서 더 아래로 가버렸네요. 하하 이것 참. 아, 이렇게 그럭저럭 살아갈 줄 알게 된 것이야말로 어른이 된 증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아무튼. 먼 훗날 변기 고치는 날이 온다면 그 날을 기념하며 제가 좋아하는 허니콤보를 먹어야겠어요.

 

 

파주

커다란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반드시 트리거가 있기 마련이죠. 야망백수 님의 경우 변기의 파업이 그것이었나 봅니다. 모든 직장인들이 그렇겠지만. 출근 없이 24시간을 보내다 보면 새삼 '하루 이렇게나 길었구나'를 체감하곤 합니다. 침대에서 온종일 뒹굴거린 뒤에 8분 스트레칭을 하고 커피도 내려 마시고, 락스를 부어 뜨거운 물로 화장실을 청소하고... 온갖 일을 처리하고 나서도 여전히 오후 6시가 지나지 않더라고요. 출퇴근 시간과 야근시간까지 헤아린다면 저는 이 회사에 제 인생(시간)을 바치고 있는 게 아닐까, 갑자기 괘씸한 마음이 드네요. 저 또한 나사가 아슬아슬하게 걸린 식탁을 3개월쯤 방치하고 있는데요. 글을 보고 관리실에 문자를 보냈습니다. 제 멘탈이 먼저 박살나기 전에, 이 식탁을 고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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