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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짱이도 겨울을 잘 날 수 있다 [밥벌이 에세이]

밥벌이 에세이

by 풀칠러 2021. 8. 7.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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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마감도비

 

정신차려보니 나는 베짱이가 되어 있었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모두 개미였고.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동학개미운동 얘기다. 우스갯소리로 오전 8시 50분이면 직장인들 대부분이 갑자기 화장실로 간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참고로 말하자면 9시에 한국 증시가 열려서다.

어느 담당자와 미팅을 진행하건 주식 얘기는 빠지지 않았다. 모두가 파란불의 쓰라림을 통감하는 만큼 오히려 대화의 윤활유가 돼 주었다. 때문에 스몰토크를 위해서는 몇 가지 유명한 종목에 대한 추이는 알아야 넌지시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었다. 

처음에는 나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자금은 없었고. 그래서 궁금함을 품은 채 닭 쫓던 개처럼 늘 차트를 바라봤다. 궁금함도 잠시, 신문 기사며 주위 사람이며 모두 주식을 하지 않으면 바보가 되는 분위기를 만드는 거 같아서 어느 순간부터는 좀 거부감이 들었다.

특히, 2030세대를 중심으로 주식 투자 붐이 일고 있다고 하니 나로서는 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열심히 살고 있는데. 부지런히 일하고 있고 내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나는 겨울을 생각하지 않는 베짱이인건가? 친구들을 만나면 나는 지금도 도태되고 있다는 농담을 자주 했지만 뒷맛은 늘 썼다.

그런데 내가 느낀 박탈감은 내가 주식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가난해졌다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주식 투자를 하지 않아서 나를 게으른 사람 취급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기인한 거였다. 최근의 붐으로 유명세를 얻은 자산운용 전문가, 개인 자산가, 애널리스트, 유튜버들은 모두 주식 투자를 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처럼 얘기를 하고 있었다.

뭔가 삶이 쪼그라드는 기분이 들었다. 주식 관련 책도 내고 유명 토크쇼에도 나온 어느 자산운용 전문가는 과소비를 경계하고 그 돈으로 주식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 주식에 투자하지 않고 필요치 않은 곳에 돈을 쓰는 건 ‘거지마인드’라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미래를 대비하는 게 어떻게 틀릴 수 있을까. 


그런데 문제는 그게 나를 너무 옥죄는 거 같았다. 이게 꼭 필요한가? 이건 현명한 소비가 맞나? 그 모든 감각에 하나하나 견적을 내는 동안 내 삶의 가치관이나 확고함, 취향 등은 감자 칼로 사정없이 감자를 깎아내는 것처럼 떨어져나갔다.

나중에는 감자를 왜 깎고 있는지 잊어버리는 거 아냐? 요즘은 주식 투자와 관련한 소식을 접하다보면 이런 생각이 가끔 든다. 현명한 소비, 미래를 위한 투자. 늘 기민하게 움직여야 하고 시장을 읽는 눈을 키워야 하고. 그 모든 걸 따지고 미뤄두고 아끼고 챙기려다 결국 우리는 감자의 싹만 남겨두는 건 아닐까. 

저금리 시대라는 특수성이 있겠지만 일단 절벽으로 내몰고 나서는 아무도 책임져 주지 않는 점도 나는 좀 분했다. 그러니까 네가 가난한 거야, 그게 거지마인드야 라고 말한다면 내가 할 말은 없지만.(아, ‘거지마인드’라는 단어, 지금 쓰면서도 너무 화가 난다.)

그렇다고 주식 투자를 하고 있는 사람을 탓한다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 아니다. 자본주의는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지 않나. 농담이다. 나는 자본주의를 아주 좋아한다. 자본주의가 나를 좋아하지 않을 뿐. 그저 나는 지금도 어지럽고 실수투성이에 정신없는 내 하루에 또 다른 복잡성을 더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거다. 

주위를 보면 친한 친구들도 이미 주식 투자를 많이 하고 있다. 근로소득으로 모든 지출을 충당하기에는 세상살이가 점점 더 팍팍해지니까. 일확천금도 아니고 안심할 뒷배 정도는 두고 싶어하는 마음은 모두가 같을 테다.

어떤 친구는 반농담조로 오히려 월요일이 기다려진다고 했다. 장이 열리니까. 눈치가 빠르고 머리회전이 비상한 친구니 오히려 그에 맞는 라이프스타일을 잘 찾았구나 싶기도 했다.

고백컨대 지금도 내 휴대폰에도 ‘증권플러스’, ‘삼성증권’, ‘영웅문S’(무슨 생각으로 지은 이름일까?)와 같은 주식거래를 위한 앱이 깔려있다. 깔려만 있다. 이 앱들이 내 휴대폰 용량을 차지한지도 언 넉 달이 지나가는데 여태 제대로 사용해본 적은 없다.

나도 언젠가는 주식 투자를 하게 될까. 모르겠다. 내 작고 귀여운 월급은 때때로 나를 너무 초라하게 만들고 이 기분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나도 동학개미운동에 뛰어들지도.(최악의 타이밍일 게 보이지만.)

팔랑귀인 나는 오늘도 아침마다 쏟아지는 기사와 카카오톡 단톡방 정보에 눈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지금 내가 가진 푼돈을 모두 쏟아 부었을 때 거듭해서 자산이 불어나는 상상을 한다. 그러나 상상은 상상일 뿐. 미래는 준비해야겠지만 우선 나는 오늘 소중한 것에 투자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커피 한잔 값으로 주식을 사지 않고, 주식을 살 돈으로 커피 한 잔을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했다. 베짱이는 베짱이의 방식으로 겨울을 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20.12.02)


 

 

아매오


흥미로움과 불안함 사이를 방황하다 저는 주식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월급쟁이가 돈 버는 방법은 주식과 부동산밖에 없다지만, 그것이 더 많은 연봉을 바라는 일과 어떻게 다른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거지 마인드인가). 돈을 버는 구조와 이유를 알지 못하면 잃는 것도 한 순간이라는 생각. 그리고 남들은 주식으로 금융 공부를 시작해 부동산으로 넘어간다 그러던데 (이제 두 번째 이유) 사실 제가 부동산으로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요(거지 마인드…?). 금전적으로도 생활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여유가 없네요(변명처럼 들리겠지만). 베짱이 눈엔 그저 개미들이 대단해 보일 뿐입니다.

 

야망백수


거..거지마인드라니!!! 제가 전국거지마인드협회장으로서 오래된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카리브해로 휴가를 떠난 경제학 교수가 대낮부터 쳐 놀고 있는 어부를 만나서 물었답니다. 왜 나가서 고기를 더 잡지 않느냐고. 어부는 이미 오늘 내다 팔 고기는 다 잡았다고 했답디다. 경제학 교수가 어부의 거지마인드를 고쳐주기 위해 열변을 토했습니다. 지금 나가서 일을 하면 어획량은 두배가 될 것이고 그럼 보트를 하나 더 사고 직원도 고용하고 그러다보면 어획량은 4배가 될 것이고 그렇게 배를 늘려가다보면 회사를 차리게 될 것이고 더 열심히하면 상장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어부가 물었습니다 “그럼 그 다음엔 뭐하죠?” “그럼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여가도 즐길 수 있을 거요!!” 어부가 답했습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게 그거라오. 이제 집 가서 기타치다가 해 떨어지면 모히또 한 잔 빨러 갈 겁니다.” 근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요즘 같으면 모히또 빨면서 주식 투자해도 좋을 거 같아요. 쩝.

 

파주

네, 제가 바로 요즘 무서운 게 없다는 동학 불개미입니다. 매일 숫자 색깔에 희비를 오가는 쫄보 투자자이기도 하죠. 소액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금액으로 덤벼들고 있지만, 그 숫자놀음에 어찌나 심장이 떨리는지 모르겠습니다. 화장실을 가는 동안 등락이라도 한번 확인하고 나면 그날 업무시간에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게 되더군요. 파란색 숫자라도 뜨는 날이면 멍청한 내가 ‘개잡주(증권시장에서 나쁘게 평가받는 주식)를 샀구나’하고 매서운 자기반성을 하고, 빨간색 숫자가 뜨는 날에는 ‘시드머니가 10억 있었으면 당장 관뒀을 텐데!’하고 통렬한 후회를 하곤 합니다. 그간 겪어본 바로는 어느 쪽이든 아쉬움만 남는 것이 개미의 주식라이프인 듯합니다. 하지만 빨간불이 들어오는 개미의 통장에는 수익이라도 남겠죠.

-주말마다 월요일을 기다리는 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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