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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의 소비 [밥벌이 에세이]

밥벌이 에세이

by 풀칠러 2021. 8. 7.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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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마감도비

 

요즘 나에게 취미라고는 소비가 전부다. 누가 나에게 하루 중 가장 설레는 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점찍어둔 제품을 사기 전 유튜브에서 해당 제품의 리뷰를 찾아보는 시간과 장바구니에 담긴 제품을 사기 전 적용 가능한 쿠폰과 제휴 혜택을 찾아보는 시간이라고 답할 것 같다.

 특히, 퇴근 후에는 구천을 떠도는 혼령처럼 침대에 누워 ‘쿠팡’, ‘오늘의 집’, ‘무신사’, ‘당근마켓’과 같은 앱을 끊임없이 떠돈다. 그리고 고민은 배송을 늦출 뿐이라는 생각을 하며 올해의 어워드로 꼽힌 화장품, 기발한 생활용품, 가성비 좋은 IT제품을 끊임없이 장바구니에 올리고 가격을 서로 견줘보고 힘껏 결제버튼을 누른다. 그리곤 뿌듯해 한다. 일종의 씻김굿인 셈이다.

 이제는 소비를 하기 위해 집을 나설 필요도 없지만 그마저도 집밖으로 나를 불러낼 수 있는 존재는 다이소와 올리브영이 유일하다.

 결제 내역을 보고 있으면 씁쓸한 기분이 들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내 안에서 보상심리가 열심히 스스로를 변호하기 때문이다. 일이 이렇게 힘들었는데.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일했는데. 야식 정도는(또는 이렇게 유용한 생필품 정도는) 결제해도 괜찮은 거 아냐? 하면서 말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이런 즉흥적인 소비 성향이 더욱 가속화됐다. 쿠팡와우 서비스를 구독하고 있는 입장에서 지금 당장 갖고 싶은 (작고 소중한) 제품을 배송비도 들이지 않고 다음날 아침이면 당장 손에 쥘 수 있으니 말이다. 솔직히 소비만큼 내 마음대로 되는 세상일이 어디 있을까 싶다.(물론 돈을 갚는 건 별개다.) 일은 많고 시간은 부족하고 체력과 집중력은 줄어가는데. 짜증과 허탈감을 풀 수 있는 이만한 해결 방법이 없다.

 코로나19가 취미 생활을 어렵게 만든 것도 한 몫 했다. 운동도, 모임도, 전시나 영화 관람도 안 되다 보니 스트레스를 풀 곳이 없다. 복싱이나 클라이밍과 같이 몸을 쓰는 운동을 좋아하고 카페나 서점을 찾아다니는 걸 취미로 삼는 사람에게는 답답할 노릇이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잠들기 전 불현 듯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느긋함, 안락함과 같은 하루의 결이거나 두근거림, 짜릿함과 같은 삶의 태도인데, 내가 문제를 회피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결국은 내 삶이 달라지기를 바라는 건데 손쉬운 소비로 내 삶이 정말 나아질까, 일이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고 스트레스가 심하지만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오늘의 집에서 예쁜 인테리어 소품을 사면 내 하루가 더 풍요로워질 거라고 굳게 믿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

 그 날 이후로 이 질문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고 있는 건 손쉬운 방법으로 내 삶을 바꿀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접겠다는 일종의 다짐이지만 여전히 고민으로 불면의 밤을 건너고 있다. 내 하루를 바꿀 수 있는 게 더 나은 제품이 아니라 더 나은 나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20. 12. 30)

 


 

아매오


다양한 종류와 깊이의 취미와 취향을 가진 풀칠러님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제 경우엔 취미와 취향이 가루가 되어 사라진 자리에 소비만 남았다는 말보다는 보잘 것 없는 취미와 취향이 그나마 소비 덕에 간신히 그 형태라도 유지하고 있다는 말이 어울릴 듯합니다. 전 아무래도 틀렸어요. 소비 짱. 돈 쓰는 거 최고.

그러고 보면 ‘불금’이야말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소비의 결정체 아닐까 싶어요. 금요일을 두고 비공식 월루의 날이자 모든 게 X됐음을 알면서도 일단 퇴근하는 날이라 정의하는 것도 실은 일주일 간 쌓인 업무 스트레스에 대한 보상 심리인 셈입니다. 안 그래요? 금요일 밤엔 괜히 좋은 거 먹고 싶잖아요. 나만 그런가.

 

야망백수


작년에 혼자 여행할 때 말도 안 통하고 아는 사람도 없고 외로워서 어쩌면 내가 투명인간이 아닌가하는 공상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요, 그럴 때마다 저의 실존을 확인해 준건 언제나 소비였답니다. 카페에 들어가 커피나 빵을 사면서 제가 다른 사람 눈에도 여전히 보인다는 걸 확인받곤 했죠.

그런데 여행을 마치고 고국에 돌아와 직장을 갖게 되니 이런 ‘투명인간 의심병’을 더 자주 앓게 되는게 아니겠어요? 무기력하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 나라는 존재가 용해되고 있는 건 아닐까, 혹은 이미 용해되어버린 건 아닐까하는 의심이 끊이질 않더라구요. 그럴 때 마다 퇴근길 지하철역의 최강어묵에서 어묵을 사먹었습니다. 10개가 넘는 어묵 종류를 마스터했다고 지인에게 이야기했더니 ‘어묵으로 취향을 넓혔구나!’라고 칭찬하는 뉘앙스의 말을 해주더군요.

실존의심-소비-취향확대의 순환계에 살고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열심히 벌고 열심히 쓰며 취향도 찾고 GDP에 일조하며 사는 것,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우리네 삶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깊이 생각하지 말고 사고 싶은 거 다 사고 살아요 우리.

 

파주

"시발비용(소비)가 월급보다 많아지면 퇴사해야 한다."

일전에 한 업계 선배에게 들었던 말이 떠오르네요. 뭐든 확신하지 말자는 게 제 모토이지만 적어도 이 공식(시발비용>월급=퇴사) 만큼은 정답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사람 때문이든 일 때문든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카드를 팡팡 파라파라 팡팡팡 붐바야 하고 쓰다 보면 말이죠, 놀랍게도 번 돈보다 쓴 돈이 많아지는 기현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요즘에도 대청소를 하는 날마다 '이걸 내가 왜 샀지' 싶은 물건을 한 무더기 발견하곤 합니다. 한껏 자책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과거의 제가 딱하게 느껴져요. 집중력을 높여준다는 번쩍스틱이나 청양고추 150개 분량의 매운맛이 함유됐다는 불마왕라면을 보면서 제가 얼마나 일에 절실했고, 또 고통받았는지를 가늠할 수 있거든요. 이렇게 보니 소비가 곧 고통의 흔적인 동시에 위로의 기록일지도 모르겠네요. 어차피 쓴 돈, 좋게좋게 생각하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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