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 : 아매오
잠이 없는 아이였다. 아침에 눈을 뜨면 지난 밤이 궁금…하지는 않았지만 웬만하면 벌떡벌떡 일어나 하루를 준비하는 편이었다. 돌아보면 대체로 비효율적으로 굴러가는 삶이었지만 수면의 질만큼은 남보다 효율이 높았던 듯하다. 그 덕분이었을까? 설레는 맘으로 준비한 책가방을 머리맡에 두고 잠들었던 초등학교 입학 전 날부터 술에 잔뜩 취해 쓰러지듯 잠들었던 대학교 졸업 날까지 학교 가기 싫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솔직히 말해 조금 즐거웠던 것도 같다. 물론 학교가 놀이공원은 아니므로 마냥 즐겁기만 한 건 아니었지. 그래도 나름의 재미를 찾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잠이 없는 어른으로 자랐다. 직장인이 되고서도 이른 아침에 눈을 뜨는 게 어렵지 않았다. 가야 하는 곳이 학교에서 회사로 바뀌었지만 가기 싫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여전히 없었다. 물론 학교 다닐 때에 비해 즐겁다고 느끼는 순간은 눈에 띄게 줄었다. 그래도 나름의 재미를 찾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우선 돈을 번다는 것이 신기했고, 나와 다른 능력치를 가진 사람과 함께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약간의 보람도 느꼈으며, 외부에서 미팅할 때면 이 사회의 일부가 됐다는 일종의 효능감을 누리곤 했다. 멋지게 일하는 사람들을 동경하며 어딘가 벅차오르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눈을 떴는데 저절로 다시 감겼다. “아 회사 가기 싫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육성으로 내뱉었다. 내뱉음과 동시에 헉! 소리와 함께 눈을 떴다. 방금 뭐라고 한 거지? 내 입에서 나온 말이지만 매우 낯설었다. 당연하지. 말은커녕 생각도 해본 적 없는 내용이었으니까. 누운 채로 요즘 회사 생활을 돌아봤다. 나의 상태도 점검해봤다. 부정적인 감정은 나에게 아주 큰 영향을 끼친다. 내가 무언가를 싫어하거나 미워할 수도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영 찝찝한데, 그건 오직 스스로를 통해서만 가능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향한 냉소는 늘 아픈 법.
지각할 수는 없으니 억지로 몸을 화장실에 밀어 넣었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팔다리를 상하의에 구겨 넣은 다음 집을 나섰다. 9시 11분에 부평에서 출발하는 용산행 급행열차를 타고 신도림에서 환승한 뒤 합정에 내려 회사 문을 열고 들어가는 9시 55분까지 머릿속에선 아침에 내뱉은 말이 맴돌았다. 아 회사 가기 싫어… 아 회사 가기 싫어… 아 회사 가기 싫어… 나는 그것을 하나의 위험신호로 받아들였다. 어딘가 어긋난 게 틀림없어. 얼마나 심한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히 삐걱거리고 있었다. 출근과 퇴근으로 이어진 채 내 일상을 떠받치고 있던 두 세계가.
지금 하는 일이 하고 싶던 일이 아니어서 그런 줄 알았다. 틀린 건 아니다. 또한 그게 나쁜 태도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지만, 하기 싫은 일만 하면서 살 수도 없으니까. 양쪽이 타협할 만한 수준은 돼야 지속 가능하지. 다만 그게 진짜 문제는 아니었다. ‘하기 싫은 일’은 본능적으로 안다. 하기 싫은 건 그냥 하기 싫으니까. 그런데 나는 ‘아 회사 가기 싫어’라고 입밖으로 내기 직전까지 내가 회사 가기 싫어 하는지 몰랐다. 왜일까?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역량을 의심하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더 정확히 말하면, 아, 나, 못 할 것 같은데.
불안했다. 필수 역량이 아예 없는 건지, 아직 안 해봐서 모를 뿐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그 상태에서 끌고 온 일들이 지난 몇 개월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무엇을 해왔는지가 보이지 않으니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보이지 않았다. 하물며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보일 리가 없지. 얼마나 멀리 왔는지 또 얼마나 멀리 가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처한 배는 깜깜한 바다 위를 불안하게 출렁거릴 뿐이었다. 그제야 알게 됐다. 아! 잠이 있고 없고는 학교 가기 싫은 거랑 아무 상관 없구나! 회사 가기 싫은 건 더더욱! 다들 아침을 싫어하고 월요일을 괴로워하는 게 다 불안감 때문이었구나!
자기 삶에 책임감을 가진 누구나 불안에 떤다. 아무리 강한 확신이 있더라도 불안감 하나 품지 않은 사람은 없다. 단지 그것을 압도할 만큼 더 강한 확신을 갖기 위해 안팎으로 동기부여를 더하는 데서 차이가 생길 뿐. 게다가 진짜 중요한 사실은 확신도 불안도 결국 내 것만 보인다는 점이다. 그러니 우리는 제각기 서 있는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미련 없이 돌아서는 건 불안 속에서도 최선을 다한 사람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니까. 어쩌면 수많은 풀칠러들이 “아 회사 가기 싫다”라고 하면서도 꾸역꾸역 출근하는 이유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21.03.03)
저는 의미없다고 느끼는 순간부터 회사든 학교든 도저히 못나가는 프로 탈주러입니다. 고등학교때 보충학습,야자에서부터 대학교때 몇몇 과목을 거쳐 전 직장까지...아 00 가기 싫다를 직접 실현할 때마다 저는 '의미 있음'에 더 가까워지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매오님 글을 읽으니 제 삶에 책임감없는 태도였던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네요.
의미없는 것 같아서 가기 싫은 것과,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몰라서 불안해서 가기 싫은 건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세상엔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봐야만 알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일들이 있나봐요. 어쩌면 제가 지금 똥밭에서 구르고 있는 이유도 '나는 찍어먹어보지 않고도 안다'는 오만을 부린 대가인지도 모르구요. 그렇지만 저는 우리 모두가 지금 자기가 놓여있는 똥밭을 꽃밭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어..잠깐...그러면...'어떤 똥밭에서 도망치더라도 결국엔 똥밭이고, 그 똥을 치우는 방식으로만 인생은 살아진다'라는 결론인데...허허 인생 참 개같네요. 아 살기 싫다.
매일 아침을 욕설로 맞이하는 저로서는 아매오님의 회복력(?)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늘 '출근하기 싫다'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네요.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 빌어먹을 출근을 해야 하는 걸까'하며 고민했더랬죠.
출근이 미치도록 하기 싫었던 한때 회사 사람들에게 '출근하기 싫지 않느냐?'며 철없이 묻고 다녔던 적이 있어요. 그 멍청한 질문을 듣던 상사들 모두 '회사 다니니까 그냥 하는 거죠, 뭐.'라며 별 거 아니란 듯이 답한 기억이 납니다. 마치 '무슨 생각 하면서 스트레칭 하세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라고 답하던 김연아 선수처럼요. 매일을 꿋꿋하게 출근하는 직장인이야말로 진정한 프로가 아닐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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