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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레벨업 [밥벌이 에세이]

밥벌이 에세이

by 풀칠러 2021. 8. 9.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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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마감도비

 

웹소설 기반의 웹툰 <나혼자만 레벨업>이 인기다. 보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줄거리를 간단히 설명하면 던전에서 몬스터를 사냥하는 ‘헌터’라는 직업이 자리 잡은 세상에서 최약체였던 주인공이 어떤 일을 계기로 남들과는 다른 시스템 속에서 혼자 레벨업을 하며 끊임없이 강해진다는 이야기다.

RPG 게임 시스템을 세계관으로 하는 게임 판타지물은 낯설지 않지만 이 작품이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는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나혼자’, ‘레벨업’을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일천한 경험과 능력으로 무시당하던 주인공이 점차 주변의 인정을 받아간다는 점이 독자로 하여금 강한 감정이입과 몰입을 이끌어낸다.

재미있는 점은 레벨업이 저절로 이뤄지는 게 아닌 만큼 주인공은 다른 인물들이 보이지 않는 퀘스트를 해결해야 하고, 매일매일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웹툰에 너무 몰입을 해서일까. 아이패드를 끄고 자리에 누워서도 망상에 빠지게 된다. 직장에서도 ‘나혼자 레벨업’이 될까 하고.

밀레니얼(이라는 단어도 Z세대가 등장하면서 금세 낡은 감성을 지니게 된 것이 원통하지만) 세대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성장’을 원하는 것이라고 한다. 직장인을 타깃으로 하는 온라인 콘텐츠와 광고에서 성장, 일잘알 등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 일 것이다.

일은 일 뿐이라고, 너무 열심히 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도 같은 풀칠 레터 멤버들만 봐도 어떻게 더 나은 결과물을 낼 수 있을지, 어떻게 업무 환경을 더 효율적으로 바꿀 수 있을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니어 직장인들의 ‘성장 욕구’는 어쩔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욕구가 너무 커지면 가끔은 괴롭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자신이 한심해지고 남들과 비교하면 나는 늘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다. 이직을 하고, 공부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 업계 얘기를 들어도 내가 성장하고 있는 게 맞나 하는 의심이 머릿속을 파고든다. 그렇게 무력감과 조바심과 불안감이 발목을 잡게 되면 성장 욕구는 더 이상 성장통이 아닌 만성 질환이 되어가는 것 같다.

이렇게 성장에 대한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차에 나혼자 레벨업을 보면서 나에게는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나만의 시스템이 있고, 나만의 상태창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떻게 보면 성장에 대한 정의를 조금 다르게 내리게 된 것이다. 겉으로 보이지 않는 성장도 있다고.

그 뒤로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조바심을 내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이게 됐다. 자괴감을 가지기 보다는 과정으로 그 자체로도 나는 성장하고 있다고 독려하게 됐다. 경력직 또는 몇 년차라는 족쇄로 스스로를 얽매이기 보다는 어제의 나와 비교했을 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나를 지키면서 일에서의 성취를 얻어내고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려고 한다.

조그마한 프로젝트를 맡아서 일을 마무리 짓고, 새로운 기획안을 올리고, 전화 통화로 의견을 조율하고, 쌓이는 메일함을 비워내고, 이 모든 작고 번거로운 일들마저도 나에게는 ‘나혼자 레벨업’으로 가는 크고 작은 퀘스트 중 하나라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혼자 레벨업을 하고 있다. 나혼자, 라기보다는 나만의 방식으로 또는 나만의 속도로 라는 수식어가 더 정확하겠지만 말이다.(21.03.10)


 

 

아매오


영감! 통찰! 성장! 경험! 그런 단어들 속에서 살다가 문득 생각했습니다. 이거 또한 입시나 취준처럼 하나의 트랙 위에서 벌어지는 순위 경쟁이라고. 그러고 보면 전 그런 트랙에서 항상 들러리였는데 말이죠. 들러리가 나쁜 건 아니지만 굳이 그 트랙에 오르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달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겁니다.

잘 나가는 브랜드나 소문난 일잘러들을 보며 내 미래를 그리는 모습이 어쩐지 서연고서성한중경외시를 외던 고딩 때와 겹쳐 보이는 건…착각일까요. 근데 솔직히 무서워요. 하고 싶은 거 하고 싶은데, 그게 뭔지도 모르겠고. 트랙 밖으로 뛰어내릴 용기는 없고. 나 쿨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야망백수


마감도비님 덕분에 ‘성장’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네용. 저는 성장이 속력같은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능력치가 증가하는 정도를 나타내고 있긴 하지만 그 방향은 포함되지 않은 거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돌격 앞으로!”를 외치는 거랑 비슷하다고 할까요?

저는 성장이라는 말을 적응력과 자생력으로 나눠서 봐야한다고 생각해요. 성장이란 결국 더 잘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고, 잘 살기 위해선 시스템에 잘 적응하던가 시스템 밖에서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이 되거나 둘 중 하나여야 하니까요. 게임으로 치면 ‘전직 트리’가 둘로 나뉘어져 있는거죠.

하지만 한편으론 적응력과 자생력 중 개인이 뭘 택하든 큰 차이가 없는 세상에 살고 싶어요. 종종 보게되는 음주,아부,성희롱만 할 줄 아는 어른들은 성장을 멈춰서 그렇게 된게 아니라,  ‘사회생활’쪽으로 성장을 한 결과라는게 참 징그러운 일이잖아요.

레벨업 하기도 힘든데 성장의 끝에 뭐가 있는지 고민하기는 참 버겁죠. 그래도 전 자생력을 키우고 있는지 적응력을 키우고 있는지, 내가 선택한 ‘성장 트리’가 진짜 세상 속에서 뭘로 이루어져있는지를 계속 검토해야한다고 생각해요. 나혼자 레벨업하는 것 같지만, 우리는 매 순간 세상도 같이 성장시키고 있으니까요.

 

파주

얼마 전 친구들과의 대화 중에 '직장에서 성장하는 게 그렇게나 어려운 일인지 몰랐어'라는 말을 내뱉은 적이 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회사에서  1인분을 해내지 못하는 상황을 자책하는 말이었을 테지만, 지금은 조금 다릅니다.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 과연 한 인간이 성장할 수 있는가에 대해 조금 회의적이게 되었거든요.

업무능력을 키워 유능한 인재로 거듭나는 것도 좋겠지만요. 제가 원하는 성장은 회사가 원하는 방향과는 조금 다릅니다. 저는 상사를 설득시키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부족하지만, 드립커피를 제 취향대로 기가 막히게 내리거든요. 날씨에 딱 어울리는 플레이리스트도 금방 잘 만들어 내고요. 무능한 사회인의 변명처럼 들려도, 아무렴 어떻습니까. 아이유의 말마따나 사람이 포켓몬도 아니고 매번 성장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게임세계 속에서도 보스몹을 경쟁하듯 때려잡는 랭커들이 있는 반면 마을 안에서 수다 떨며 게임 자체를 즐기는 유저들이 있잖아요. (현실 세계에서도 그게 가능하기만 하다면) 저는 그런 부류의 인간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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