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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근무도 근무입니다 [밥벌이 에세이]

밥벌이 에세이

by 풀칠러 2021. 8. 6.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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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마감도비

 

느닷없이 사내 게시판에 공지가 올라왔다. 8월 31일까지 전 직원 재택근무. ‘오, 대기업, 공공기관만 한다는 재택근무를 나도?’라는 생각도 잠시, 재택근무도 재택 ‘근무’라는 지극히 당연한 현실에 직면하고 말았다.

우선, 내가 첫날부터 체감한 건 일과 생활의 경제선이 모호해진다는 점이었다. 별도의 출퇴근이 없고, 업무 공간이 곧 생활공간이다 보니 분명 퇴근 시간이 지났는데 휴대폰 알람이 오면 마음이 불편했다. 업무 지시일까 봐. (왠지 모르게 재택 근무 이후 퇴근 시간을 넘긴 업무 지시가 더 많아진 것 같은 건 단순히 내 기분탓일까?)

재택근무를 하면 몸이 훨씬 더 편하겠지? 같은 기대에도 조금씩 균열이 갔다. 늦은 저녁 평소와 다름없는 시간에 업무를 모두 마치자 귀신같이 피로감이 찾아왔다. 퇴근길 지하철 또는 버스 안에서 느끼게 되는 피로감, 온몸이 천근처럼 무거운 바로 그 감각이 말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재택근무를 한다고 해서 집중과 긴장, 스트레스로 인한 피로는 피할 수는 없었던 셈이다.

관리자의 감시와 견제도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다. 일하는 입장에서야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어떻게 딴 짓을 하겠느냐고 토로하겠지만 이게 관리자 입장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조금 심하게는 부당한 의혹을 받을 수도 있다. 하필 화장실을 가는 바람에 연락을 받지 못한다거나 내부망을 통한 보고가 늦어질 경우 현재의 위치나 작업 상태에 대해 문책을 받을 수 있다는 거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누군가로부터 “자냐?”라는 말도 들어봤다. 상대의 수면 상태를 묻는 질문을 구 연인에게서 듣는 것보다 더 기분 나쁜 케이스가 있을 거라는 걸 처음 알았다.


여기까지 쓰자 재택근무가 최악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장점도 분명하다. 솔직히 나는 재택근무가 더 이어졌으면 좋겠다. 코로나는 빨리 종식됐으면 좋겠고.(일은 하지 않고 월급은 받고 싶은 심정과 비슷하달까.)

역시나 출퇴근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다. 길에서 돈과 시간을 버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 흐린 눈으로 대중교통에 몸을 실지 않아도 된다는 것. 직장인에게 마치 축복과도 같았다. 아침에 부스스한 얼굴로 전날 사놓은 커피 한잔을 마시며 노트북 앞에 앉으면 그날 아침 업무 준비는 모두 끝.(물론 머릿속은 그렇지 않다.)

그 다음으로 좋은 점은 사회성을 발휘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집에 혼자 있다 보니 행동거지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거다. 가령, 메신저로 업무 지시를 받았을 때의 표정을 숨기지 않아도 된다는 것. 예를 들어, “내가?” 라던가 “그게 되겠냐?”라던가. 심지어 욕도 할 수 있다.(만세!)

자극적인 예시를 들긴 했지만 회사에서, 사무실에서 다소 어색하고 불편한 분위기 속에서 가면을 쓰기 위해 우리가 소모하던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도 더 큰 장점으로 다가왔다.(앞서 풀칠 에세이에서 한 번 다룬 적이 있는 점심시간의 스몰토크를 위해 아이디어와 제스처를 짜낼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8월과 함께 내 재택근무 기간은 끝이 났고 이 글을 읽는 시점이면 내 재택근무의 운명이 어떻게 됐을지 알 수 없지만. 코로나가 잠잠해지지 않는 이상 재택근무는 풀칠러들의 일상에 더 스며들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마치 마스크처럼 말이다. 그래서 궁금하다. 당신이 겪었던, 혹은 바라는 재택근무는 어떤가요? (2020.09.02)

 


 

아매오


고심 끝에 재택근무를 해체하기로 했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들었다면 못내 아쉽고 샘도 나고 심술도 부렸을까요? 말단 사원이라 그런지 재택근무의 ‘ㅈ도’ 못 들어봤기에 사실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저희가 재택근무 중이라서요”라거나 “에디터님은 재택 안 하세요?”라는 외부 담당자의 말을 들을 때 또는 급격히 줄어든 지하철 내 인구 밀도가 눈에 보일 때 비로소 재택근무의 시대가 도래했단 사실을 실감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직장 동료와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잡담 나누는 시간마저 없으면 심심해서 미쳐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 내립니다. 그래요. 제게 재택근무는 단순히 회사와 일이라는 범주를 넘어서는 변수입니다. 가족과 친구가 근처에 있었다면 또 달랐을지도 모르죠.

 

 

야망백수


아아! 재택근무를 바라보는 백수의 마음이란! 아싸감성을 향유하는 인싸들을 보며 박탈감을 느끼는 아싸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요? 제 옹졸한 맘씨 탓에 친구들 재택근무한다는 소식에 조금 배가 아프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저는 재택근무야말로 현대인의 희망이자 미래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회사가 재택근무를 적극적으로 시행해줬으면 좋겠어요. 출근준비니, 사회성이니 하는 것들은 따지고 보면 얼마나 비효율이에요? 업무와의 연관성이 극히 낮은 스트레스 요인이지요. 재택근무를 함으로써 지금까지 직장생활이라는 이름으로 받아온 스트레스의 상당 부분이 업무랑 상관없었다는 걸 알게 될 것이고...그러면 그 비효율을 더이상 감수하려 하지 않는 아름다운 세상이 찾아오지 않을까요? 이상 방구석 백수의 재택근무 긍정론이었습니다.

 

파주

뉴노멀, 언택트 등등 낯선 단어들이 한껏 으스대는 2020년입니다. 개중에서 피부에 와닿는 건 역시나 재택근무네요. 저 또한 트렌드에 뒤쳐지지 않으려 재택근무를 시도해봤습니다만 저에게는 맞지 않는 다는 걸 단번에 체감했습니다. 사무실에서도 좀처럼 집중하지 못하는 사원놈팽이가 집에서 효율적이게 일할 리가 없었으니까요. 고작 메일 2통을 확인한 후에 침대에 엎어져버리거나 커피를 내려먹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시간과 월급을 축내고 있으니, 아무리 개털양심이라도 이건 아니다 싶어 꾸역꾸역 출근하고 있습니다. 또, 순도 100% 집돌이인 탓인지 집을 업무공간으로 활용할 때 묘한 불쾌감이 들기도 하더라고요. 재택근무라도 한 날이면 행여 회사의 냄새가 집에 밸 새라 페브리즈를 연사하곤 합니다. 회사 꺼져! 집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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