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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와 이직

밥벌이 에세이

by 풀칠러 2021. 8. 4.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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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마감도비

 

행복한 직장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직장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을 조금 비틀어봤다. 아마 많은 직장인들이 퇴사를 하고 이직을 하는 이유를 가장 잘 보여주는 문장이 아닐까 싶어서. 이제 겨우 3년차에 접어든 주제에 모든 경우를 다 알 수는 없지만 친구들, 일로 만난 사람들, 들려오는 얘기들. 모두가 조금씩은 다른 고민을 안고 오늘의 직장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내 경우에는 자괴감이라는 요인이 가장 컸다.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기업에서 일한다는 자괴감. 이전 직장은 사기업치고는 워라밸이 나쁘지 않았다. 막내였지만 인간관계로 고민한 적도 없고 처우도 지역과 업종을 고려하면 박하다고 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기간의 정함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일에 대한 만족을 내려놓고 적당히 다니기에는 괜찮은 직장이었다. 미래에 대한 고민이라는 변수를 내려놓는다면 말이다.

나는 스타트업에서 일했다. 좀 더 정확을 기한다면 소규모 사업장에 해당하겠지만. 그래도 대표는 어디선가 투자처를 찾아왔고 스타트업이라면 겪기 마련이라는 보릿고개를 겪지 않아도 됐다. 월급이 밀린 적도 없었다. 문제는 모멘텀도 없었다는 거다. 회사를 다닌 지 일 년 정도 됐을까. 수익모델을 찾지 못해 이런저런 궁여지책을 내놓는 회의 가운데서 앞으로도 성장은 없겠다는 불길한 확신이 스쳐지나갔다.

그래서 이직은 나에게 마치 못다한 숙제처럼 다가왔다. 이직을 통해 직업을 바꾸거나 직장을 옮기는 친구들을 보고 난 뒤에는 그런 마음이 더 커졌다. 대개의 경우 그들은 더 나은 처우와 목표를 향해 걸어가는 듯 보였다. 부러웠다. 그럼에도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하지 못한 건 현실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아서였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이직을 준비하는 건 많은 인내심을 요하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체력적으로 지쳤다. 퇴근하고 나서 곧바로 집 근처 카페에 들어가 경력 기술서와 지원서를 썼지만 횡설수설하는 경우가 많았다. 꼭 내겠노라 마음먹고 있던 기업도 기한에 다다라서야 겨우 원서를 제출하곤 했다. 그때마다 스스로를 자책하며 제대로 이직을 하려면 결국 퇴사를 하고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하나봐, 라고 생각도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직장에 대한 자괴감은 이직 시장에 대한 불안감으로 이어졌다. 쉽게 말해서 겁이 났다. 내가 여기를 나와서 다른 곳에 갈 수 있을까? 이런 물경력을 어디에 내밀지? 같은 생각을 늘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직에 대한 갈망(?)과 현 상황에 대한 자괴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악순환하면서 불편한 허리띠처럼 늘 나를 졸라맸던 셈이다.

그러던 중 지난 6월 갑작스럽게 이직을 하게 됐다. 내가 달라진 것도 회사가 달라진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운이 좋았다, 라고 써도 무방할 것 같다. 사람인을 통해 지원한 이력서가 운 좋게 면접으로 이어졌고 당장 내일 모레 면접을 보러오라는 전화에 부랴부랴 연차를 쓰고 서울로 올라왔다. 이직 시도가 면접으로 이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라 양복까지 갖춰 입고 덜덜 떨면서 신입과 별반 다르지 않은 채로 면접을 치뤘다. 다음 날 언제 나올 수 있겠느냐는 전화를 받았다.

만일 이번 이직에 만족하느냐고 묻는다면 아직은 머뭇거리게 된다. 급하게 내린 결정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더 괜찮은 처우를 보장받을 수 있었고 하고 싶은 일에 조금 더 가까워지게 됐다.(이건 다음 번 글에서 좀 더 풀어쓰고 싶다.) 그렇다고 완벽하게 만족한 건 아니지만. 이제 갓 한 달이 지났으니 새 직장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건 조금 불공평한 처사 같다. 일단 탈출은 했으니 절반의 성공이라고 하자.

이직에는 쟁취형 이직과 탈주형 이직, 이 두 가지가 있다는데. 애매하게도 나는 그 어딘가로 향하고 말았고 오늘도 헤매고 있다. 그럼에도 이직의 경험으로 얻은 게 있다면 내가 어떤 조직에 있었던 간에 안락했을지도 모를 그곳에서 엉덩이를 털고 일어날 힘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저마다의 불행이 더 나은 곳으로 스스로를 밀어낼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기를. 이 글을 읽는 당신을 응원하고 싶다. (2020. 7. 29)


파주

 

이직이라고 하니 사회에서 만난 선배 J의 명언이 절로 떠오르네요. 써금써금한 곳에서, 큰 규모의 회사로 탈출하는 데에 성공한 J에게 축하를 건네자 그는 일말의 기쁨도 없는 표정으로 비장하게 말했죠.

"뭘 모르는구나? 이직한 날부터 이직을 생각해야 해."

당시에는 이게 무슨 개소린가 싶었죠. 제가 보기엔 정말로 괜찮은 조건(인지도, 복지 등)의 회사였거든요. 그로부터 일 년이 지나고 나서 J는 또 다른 곳으로 이직에 성공했어요. 계약서를 쓴 날부터 이직을 준비했던, 부지런한 풀칠러가 일궈낸 성과였을까요.

마감도비님은 이직의 종류를 2가지로 정의했지만, 굳이 하나를 더하고 싶어요. 이직이라는 단어만 보면 어쩐지 싱숭생숭하고 입버릇처럼 '이직하고 싶다'를 되뇌는 저의 사례를 보면 습관형 이직을 추가해야 하는 건 아닐까요. 이직, 단어만 봐도 늘 새롭고 짜릿해요.

 

아매오


인턴으로 일했던 회사가 떠오릅니다. 같은 팀 사원·대리급 모두가 이직 준비 중이었죠. 선배들의 말을 종합하면, “일에 대한 만족을 내려놓고 적당히 다니기에는 괜찮은 직장”이었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성장은 없겠다는 불길한 확신”도 따라왔고요. 결과적으로 저는 그 회사를 탈락시켰습니다. 이후 돌고 돌아 지금에 이르렀고 저는 일과 회사에 나름 만족하며 지냅니다.

 

야망백수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에는 그랜드피아노를 거실에 들여놓는 순간 자기 손이 이제 피아노를 치기엔 너무 굳어버렸다는 것을 깨닫는 등장인물이 나오는뎁쇼. 저는 이거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순간이 아닌가 생각한답니다. 스스로에게 어떤 가능성도 남아있지않음을 깨닫는 순간. 묻히지 않았다뿐이지 그 인간의 실존은 이미 사망 선고를 받은 것과 다름없지 않을까요?

비록 지금은 매일 밤 피눈물을 흘리며 샌드백을 분당 400회씩 난타하는 맛 하나로 근근히 버티고 계시지만, 분명 이번 이직으로 마감도비님의 실존수명을 늘어났을 것입니다. 개똥밭일지라도 멈추지 않고 굴러야하는 바쁘다바빠현대사회에서 풀칠하랴 실존하라 고생이 참 많은 우리네 인쉥. 눈물 섞인 땀방울을 뒤로하고 앞으로도 계속 구릅시다! 이직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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